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밥 딜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다
이미 수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설마 정통 문인이 아닌, 게다가 대중음악 노래 가사를 쓴 뮤지션이 실제로 노벨 문학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다. 퓰리처상(2008년)이 그가 받을 수 있는 최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노벨 문학상은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그의 수상 이유는 한림원이 발표한 선정의 이유에 잘 드러난다.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밥 딜런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한다”
첫째, 20세기 “위대한 미국 (대중)음악”의 성취다. 유럽 각지에서 이민 온 백인들의 음악 유산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한과 흥이 새로운 토양에서 창조적으로 어우어진 미국 대중음악은 이제 전 세계인의 삶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으로 대변되는 엘리트주의를 넘어 미국 대중음악의 보편성은 음악의 주도권뿐 아니라 문학 영역에도 큰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둘째, 대중음악에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낸” 밥 딜런의 혁신이다. 미국의 유명 음악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이렇게 말했다. “밥 딜런의 음악은 20세기 대중음악의 정신혁명과 관계된다.” 밥 딜런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심오한 사상을 가사에 담아내며 음악인들에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못지않게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 이후 수많은 연주자가 기품 있고, 아름다운 노랫말을 자신들의 노래에 담고자 애썼다. 밥 딜런의 노랫말은 하나의 철학이며 문학이다. 감상자의 가슴을 찌르는 통렬함을 지녔으며 초현실적이고, 심오한 사고의 깊이를 간직했다.
사실 그의 노래는 정확한 해독이 어려울 만큼 의미가 다중적이고, 복잡하다. 또한, 철저하게 가려진 그의 사생활과 모호한 인터뷰로 인해 그 의미를 풀기에는 많은 의문을 만들어 냈다. 그의 난해한 삶의 종적은 한 사람의 삶이라곤 믿기지 않는 다양한 면을 보여 왔다(숨겨 왔다). 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는 그의 삶과 음악, 그리고 사상의 다양한 배경과 단면을 여섯 명의 인물과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낸 아주 독특한 영화다. 이처럼 밥 딜런은 미국 대중문화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중요한 문화 아이콘이다.
» I’m not there 포스터
밥 딜런, 저항과 평화를 노래하다
1960년대 초반 미니애폴리스의 유대인 청년, 로버트 짐머만(Robert Zimmerman)은 뉴욕에 입성하며 포크계의 신성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10살 때부터 시를 썼고, 비록 학업을 마치지 못했지만,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 딜런 토마스를 차용해 밥 딜런이라는 예명을 만들며 음악계에 발을 디뎠다. 초창기에는 제임스 딘을 모방한 것 같은 패션과 표정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노래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뉴욕에서 자신이 존경한 우디 거스리를 간호하며 음악을 준비했다. 음악적으로 미국 각 지역의 민속음악을 체집하며 진정한 미국의 소리를 이어간 포크 음악의 대부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미국 서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정서와 권익을 대변한 진보 저항 운동가, 우디 거스리가 뿌린 씨앗은 고스란히 밥 딜런에게 이어져 꽃을 피운다.
특히 1963년 두 번째 앨범 <Freewheelin’>에 수록된 ‘Blowing in the wind’는 크게 히트하며 당대 반전 운동의 슬로건이 되었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평화주의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명문장들이다. 이 노랫말이 주는 의미는 최근의 한국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2절 가사를 보자.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How many year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고개를 돌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겪어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서야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겠지
Freewheelin’ (1963)
포크라는 음악 장르는 단순한 형식미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 단순성은 깊은 사색과 섬세한 감성이 바탕이 될 때만 더욱 빛나는 음악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밥 딜런의 노래는 그의 냉소적인 읊조림에 생생한 자의식과 고민이 녹아있어서 시대를 초월해 듣는 이의 귀와 마음을 파고드는 마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대수와 양병집의 노래를 들어보면 이 당시 밥 딜런의 음악과 사상적 정서가 한국의 70년대 통기타 음악에 고스란히 전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밥 딜런, 포크에 록의 옷을 입히다
1965년 통기타 포크의 영웅, 밥 딜런은 파격적인 변화를 감행한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는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가 팬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이후 팝 역사가 그를 ‘포크록’의 창시자로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밥 딜런은 이렇게 말했다. “록으로부터 젊음의 폭발하는 사운드를 끌어온 대신, 록한테는 가사를 가르쳐주는 공적을 남긴 것이다.” 포크의 심오한 노랫말과 에너지 넘치는 록 사운드를 공유한 포크록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청년 세대의 음악 문법으로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다. 이런 음악적 혁명의 중심에 밥 딜런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는 ‘Like a Rolling Stone’이 있다. 이 노래는 1965년 그의 세 번째 음반 <Highway 61 Revisited>에 실려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Highway 61 Revisited (1965)
Nobody has ever taught you how to live on the street
And now you find out you’re gonna have to get used to it
아무도 네게 거리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았겠지
지금은 그런 것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것을 알 거야
밥 딜런은 이 노래에서 성공을 꿈꾸지만 경쟁에 뒤처진 젊은이들의 좌절된 욕망과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그들의 비참한 삶, 그리고 개인주의적 경쟁사회 속에 동료의식을 배우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버린 그들의 외로움을 고발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학교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자기개발 강연과 서적들도 그들에게 ‘길 위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끊임없는 경쟁과 판타지를 주입할 뿐이다.
그는 노래 후반에 ‘구르는 돌멩이’의 또 다른 삶을 노래한다. 미래에 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은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잃을 것 없고, 아무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순전한 자유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3절 후반을 보면 다음과 같은 반전 문구가 등장한다.
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You’re invisible now, you got no secrets to conceal.
아무 것도 없을 때, 잃을 것도 없지
넌 이제 눈에 띄지 않아, 그러니 감출 것도 없어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좇던 꿈이 허황된 망상임을 자각한 순간, 우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나 자신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밥 딜런, 삶의 허무를 노래하다
1970년 전후, 미국 음악계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왜곡된 히피 정신을 가졌던 찰스 맨슨의 엽기적인 살해 행각, 롤링스톤 공연 중 일어난 폭력과 관객의 사망 사건, 소위 ‘27클럽’의 ‘위대한 3’J(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가 약물중독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 등은 음악계에 흐르던 저항문화를 주춤하게 했다. 대신 카펜터스, 캐롤 킹, 짐 크로취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노래가 사랑받게 된다.
밥 딜런 역시 이 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행복했던 결혼도 권태기에 빠졌다. 결국, 밥 딜런의 외도로 아내 새라와 이혼했고 다섯 자녀의 양육권 역시 긴 소송 끝에 잃어버렸다. 또한,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Renaldo and Clara> 역시 평단의 지독한 혹평 가운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그의 내면에 지독한 허무감이 찾아왔다.
당시 그의 내면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는 이후 그의 노래 중 대중들에게 (특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게 된 명곡 ‘Knocking on Heaven’s door’(1973)가 아닐까 생각한다. 포크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블루스곡으로 이후 에릭 크랩튼과 건스앤로지스의 리메이크로 더욱 잘 알려진 곡이다. 이 노래는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Pat Garrett & Billy the Kid>의 주제곡이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어가는 군인의 심정을 노래한 반전가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노래의 화자인 밥 딜런 자신의 황폐해진 내면세계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for me to see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어머니 이 뱃지를 떼어내 주세요
더 이상 쓸모가 없네요
점점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마치 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 나의 총을 이제 내려놓게 해주세요
나는 이제 누구도 쏠 수 없어요
길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마치 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죽어가고 있어요)
Knocking on Heven’s Door (1973)
밥 딜런, 나의 끝에서 그를 만나다
1979년, 유대인이었던 밥 딜런은 갑작스럽게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때 발표한 세 장의 앨범 <Slow Train Coming>, <Saved>, <Shoot of Love>에는 자신의 복음적 회심을 고백하고 신을 찬미하는 노래들로 채웠다. 이후 그는 전도자로 활동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왼쪽부터 Slow Train Coming (1979), Saved (1980), Shot of Love (1981)
일부 언론과 평단은 늘 베일에 싸여있던 그의 신비주의 전력을 근거로 그의 회심을 의심했다.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벌인 일종의 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노래들을 진지하게 돌아본다면 그의 회심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밥 딜런은 ‘흑인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흑인 음악, 흑인 음식, 흑인 스타일에 흑인 애인까지. 부인과 이혼 후 그가 사귀었던 여성들은 모두 남부 출신 흑인들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코러스 싱어 케롤린 데니스와 결혼해 여섯째 아이를 낳았다. 그녀 역시 흑인이었다. 그는 흑인들의 가스펠에 매료되었고,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신앙에도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의 ‘빈야드 펠로우쉽 처치’의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된다. 은사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이 교회에서 존 듀이어 목사의 영향을 받으며 결정적으로 회심하게 된다. 신약성서를 깊게 읽으며 자신의 공허한 일상을 위로하는 예수의 메시지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믿음의 가치는 앞서 언급한 세 앨범에 풍성하게 녹아있다. 특히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은유적으로 인용하며 평화의 메시지로 확장했다. 1979년 발표한 <Slow Train Coming>은 그에게 첫 번째 그래미상(최우수 록보컬 남자 부문)을 안겨주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 “When He returns”의 한 구절을 소개해 본다.
How long can I listen to the lies of prejudice?
How long can I stay drunk on fear out in the wilderness?
Will I ever learn that there’ll be no peace until He returns?
Surrender your crown on this blood-stained ground,
Take off your mask. He sees your deeds,
He’s got plans of his own to set up His throne, when He return
얼마나 오래 위선자들의 거짓을 들어야 하나요?
얼마나 오래 이 광야의 두려움에 빠져 있어야 하나요?
그분이 다시 오시기까지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없는 건가요?
이 피 흘린 땅 위에 너의 왕관을 내려놓아라
가면을 벗어라. 그분은 너의 행실을 알고 있다
그분은 다시 오실 때, 자신의 나라를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곡뿐 아니라 다른 곡에서도 그는 선명하게 신앙을 고백하며 종말론적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엔 다른 찬송 가사들과는 구별된 깊은 질문과 세상에 대한 깊은 회의가 담겨있다. “얼마나 오래? – 이 광야에서 – 진정한 평화“를 갈구해야 하나요? 결국, 그의 해답은 세상에 대한 절망 속에서 그분이 다시 오실 종말을 꿈꾸는 것으로 드러난다.
‘얼마나 오래(How long)’ 이 표현은 이후 그의 80년대 분신이라 할 만한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의 노랫말의 키워드가 된다.
How long, 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How long, How long~
Sunday bloody Sunday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일요일, 피로 젖은 일요일!
-U2, ‘Sunday Bloody Sunday’
<밥 딜런 평전>(실천문학사, 2008)을 보면 당시 그의 회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가 후대에 기독교에 심취하게 된 이유는 (중략) 미국의 혼란스런 사회상에서 이데올로기도, 아니면 그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도, 전쟁을 찬성하는 국가지배층도, 반대로 반전을 주장하는 이도, 그들의 행동 양식은 결국은 성경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밥 딜런, 영혼의 여정은 계속된다
이후 그는 빈야드 교회와 결별하며 자신의 회심에 대한 지속적인 고백이나 전도 활동에 더는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9년 발표된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In The Heart>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전한 자신의 신앙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2012년 발표한 앨범 <Tempest>에 수록된 ‘On Narrow Way’의 가사를 보자. 그의 영혼의 여정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
I’m gonna walk across the desert ’til I’m in my right mind
I won’t even think about what I left behind…
I heard a voice at the dusk of day
Saying, “Be gentle brother, be gentle and pray”
It’s a long road, it’s a long and narrow way
If I can’t work up to you, you’ll surely have to work down to me someday
나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어요. 내 영혼의 안식처를 찾기까지
나는 내가 뒤에 남겨지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날이 저물어가던 때에 한 음성을 들었어요
“평안하라 형제여, 평안히 기도하라”
그것은 먼 길이죠. 아주 멀고 좁은 길이에요
만약 내가 당신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젠가 나를 끌어내리겠죠
좌-Christmas in the Heart (2009) 우-Tempest (2012)
우리는 삶 속에 늘 완전한 해답과 성취를 바라며 살지만, 인생은 영원한 미완성의 여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땅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저항하며 좁은 길을 걷는 영혼의 길을 걷다 보면 그토록 갈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밥 딜런의 음악을 향유하길 권한다. “기독교 종말론은 희망학이다”라고 말한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의 말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를 현재화한다.
bob-8
1980년대 초, 십자가상 아래의 밥 딜런 (pictured by Ken Reagan, Christianity Today)
밥 딜런의 노랫말의 유산은 그 언어의 미학적 가치, 사회적 저항정신, 철학적 사유의 깊이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의미를 전해준다. 이 노랫말들은 어쩌면 고매한 신학자들의 언어보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과 지식을 담아낸 살아있는 카테키즘(catechism)이 아닐까?
밥 딜런의 오랜 팬으로서 이번 그의 노벨상 수상이 참으로 반갑다.
윤영훈
청어람ARMC 연구위원. 빅퍼즐문화연구소장. 저서로는 '윤영훈의 명곡 묵상'(IVP)이 있다.
이 글은 청어람아카데미(http://ichungeoram.com/)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