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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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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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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goscon@goscon.co.kr


2008년 온 세계인을 경악하게 했던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아시나요? 당시로부터 24년 전인 1984년 8월 29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인 암스테텐에서 열여덟 살이던 엘리자베스 프리츨이라는 소녀가 가출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가출을 한 것은 아니고, 그날 친아빠가 꾸며놓은 지하실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요제프 프리츨은 24년간 자신의 친딸을 지하실에 가둬두고, 성폭행하고, 아이들을 낳게 하고, 그 아이들 중 일부는 지상의 가족들과 살고, 일부는 지하실에서 살게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이미 열한 살 때부터 친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하에서 살던 아이 하나가 아파 병원에 가게 되면서 이 사건은 세상에 폭로될 수 있었습니다. 요제프 프리츨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재판에서 자신의 범죄 원인을 설명하는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요제프 프리츨은 “이 모든 것은 나치 정권을 주도한 히틀러 때문이다”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보여준 행동이 도덕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했답니다. “히틀러가 지배한 독일 정권의 사상이 나에게 스며들었고, 히틀러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고 타인을 지배하는 힘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하면서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를 지하에 가뒀다”고 한 겁니다. 가해자가 변명하며 ‘히틀러’까지 소환한 것을 보면 이 사건이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그는 자기 안에 있는 ‘히틀러’가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둘러댑니다.


뜬금없이 끔찍한 이야기를 꺼냈네요. 혹시 모르셨던 분이라면 지금쯤 인터넷을 뒤져보고 계실 테고, 알고 계셨던 분들 중에서도 ‘뭐? 히틀러 때문이라고 했다고?’ 하며 웃기는 변명이다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요제프는 지금도 감옥에 있을 텐데, 여전히 ‘히틀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부디 ‘히틀러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참 힘든 삶을 살았구나, 미안하다’ 생각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무척 나쁜 짓을 하고 핑계 대기 좋은 사람이 히틀러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히틀러는 이런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 악한 존재입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래, 미친놈, 네놈 속에는 히틀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낯선 경험, 낯선 물음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투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 아저씨 버전입니다.) 히틀러는 그런 놈 속에만 있는 걸까요? 때는 바야흐로 지난가을입니다. 지하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 공부하며 돈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던 중 상담하는 일과 사회복지시설의 대체교사직을 찾게 되었습니다. 두 곳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 몇 달을 보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너 살 빠졌어? 에구 살 빠졌네?’ 이럽니다. 잠만 줄인 게 아니라, 일하러 갈 때면 시간이 촉박해 일주일 내내 삼각김밥이 주식이 되다시피 했더니 살이 자연스레 빠진 모양입니다. ‘밥이냐? 잠이냐?’ 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더 자는 걸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레 먹는 걸 대충하게 됐던 거죠. 이렇게 동분서주하며 일하고, 공부한 덕분에 이번 학기는 다행히 빚 없이(이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학비든 생활비든 빚내지 않고, 가을학기를 마무리해가는 중입니다. 상담을 하는 건 50분씩 아동·청소년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재밌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시설에서 추석 즈음 중증장애인을 잠시 돌봐야 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저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중증장애인을 직접 돌봐본 경험이 없던 저는 그곳에서 낯선 저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혼자 밥을 떠먹을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밥을 정성껏 떠먹일 때, 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왜 먹지? 이 사람들을 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살아가게 하는 걸까? 자기 손으로 못 먹을 뿐 아니라, 자기가 직접 먹고살 걸 생산해내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왜? 후원금으로, 세금으로 이 사람들을 왜 먹여 살리는 거지? 내가 편의점에 서서 먹는 컵라면이나 길거리를 달리며 베어 무는 삼각김밥보다 훨씬 좋은 이 음식을, 이 사람들은 왜 편하게 앉아서, 멍하니 앉아만 있으면 나 같은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떠먹여 줘야 하는 걸까?’


몇 번이고 고개를 저으며 이런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제 앞에서 멍한 눈으로 밥을 꼭꼭 씹고 있는 그분에게 엄청 미안했거든요. ‘지금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은수연, 너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지 밥벌이 지가 못하니까, 혼자 밥도 못 먹고, 혼자 똥도 못 닦으니까, 뭐 죽으라는 거야?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어?’ 하고 저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오면 몸도 고됐지만 마음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큰일을 마주합니다. 그날따라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사회복지사들이 안 계셨습니다. 혼자서 열 명 내외의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전혀, 결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왜 먹나?’를 궁금하게 했던 그분이 방 안에 있는 변기 의자에 앉아 큰일을 본 겁니다. 방 안은 냄새가 가득하고, 변기도 ‘큰일’이 가득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와중에 이분은 바지도 안 올린 채 저를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저는 처음에 ‘저분이 나한테 뭘 바라지?’ 싶어 함께 바라봤습니다. 다른 생활인이 한 말씀 하십니다. 


”선생님, 이제 저분 똥꼬 닦아주고, 저거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씻어다 놓으면 돼요.” ‘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 몰라, 몰라, 난 왜 많이 먹여서는 많이 싸게 했어, 은수연, 너 바보야? 많이 먹으면 많이 싸겠지, 아 놔, 진짜 이게 뭐야? 뭐가 저렇게 당당해? 아니, 지 똥꼬도 못 닦으면서 밥은 목으로 넘어가?’1초 만에 이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제 머리를 스쳤습니다. 아니 온몸을 스쳐 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일이고 뭐고, 딱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간절히 저를 바라보는 똥 싼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고, 저는 영혼을 멀리 보낸 뒤 뒤처리를 해주었습니다. 비닐장갑을 끼고, 물티슈를 수십장 꺼내 겨우 닦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물티슈 겨우 몇 장으로 그분 뒤처리를 해주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순간 살짝 미안했지만, 어찌합니까?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데. 내 안에 히틀러 있다


그곳에서는 며칠 일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평생 남을 듯합니다. 조카가 똥을 싸고 와서 닦아 달라 해도 ‘나, 네 엄마 아니다’ 하며 겨우 닦아주던 고모입니다. 그런 제가 생전 처음 보는 성인 남성의 큰일, 뒤처리를 했으니 말입니다. 그 기억은 며칠 동안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제 속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이제 그 일 안 해도 되는데, 이게 뭐지? 뭐가, 왜 이리 불편하지?’ 친구를 만나 그 기억, 그 느낌을 말하던 중 그만 저는 딱 만나고 말았습니다. 글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작지만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던 ‘히틀러’를 말입니다.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고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히틀러와 급은 달라도 성질이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입에 밥 한술 떠 넣지 못하는 이들에게 왜 이리 정성껏 밥을 먹여줘야 하지?’를 묻고 있던 제 속에

는 ‘그들에게 밥을 안 먹였으면,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먹고 싸는 것 하나 책임 있게 처리하지 못할 사람은 생명을 앗아버렸으면 하는, 아니 적극적으로 생명을 빼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잠시 잠깐이라도 그들이 ‘밥을 먹는 이유’에 궁금증을 가졌던 저 자신이 끔찍했습니다. 똥을 치우며, ‘이렇게 많이 쌀 줄 알았나, 다음부터는 조금만 줘야겠어’라고 생각했던 잔인한 사람이 제 속에 있었던 겁니다. ‘평생 여기서 남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 후원금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 도움받으며 편하게 산단 말이지? 이게 뭔 복이래? 나는 지금도 투잡, 쓰리잡 뛰면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으면서 사는데, 아 짜증 나.’ 이런 속내를 숨기고, 웃으며 생활인들의 손을 잡아주고, 밥을 먹여주고, 닦아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히틀러와 오버랩 된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야, 그러고 보니 내 속에 히틀러 있네, 있어. 히틀러 있네, 있어.’ 화들짝 놀라 몇 번이나 이 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내 속에 히틀러 있나? 있나? 어… 어쩌지? 있네, 진짜 있네, 어쩌지?’

  

히틀러-신정원.png

▲ ⓒ신정원



당신은 어떠신가요? 가끔 자신 안의 히틀러를 만나곤 하시나요?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무시하고, 저 사람은 저런 이유로 싫어하고,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이유로 좀 사라졌으면 싶고. 제 속의 히틀러를 마주한 순간, 저는 ‘얼음’이 되었습니다. 요제프가 말한 핑계 대기용 히틀러가 아닌, 내 속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히틀러 말입니다. 사악한 생각, 사악한 행동을 하게 될 때면, ‘막살아볼 테다’ 못되게 굴며 저도 요제프처럼 핑계 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아니고요, ‘아빠 때문에, 개 같은 아빠 만나서’라는 말,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이런 존재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히틀러가 있지 않나요? 정말 아돌프 히틀러가 문제일까요?


은수연이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던 제 속을 보고, 보여주는 중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정도는 아니어도, 저는 글쓰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저를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어제와는 다른 시선으로 저와 타인, 세상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제 부끄러운 속을 마지막에 다 털고, 제 안에 있는 가장 부끄러운 속내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아니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제 삶의 히틀러, 아빠 핑계를 버리고, 내 속의 괴물이든 바보든 인정하며 마주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번 곰곰이, 조용히, 자기 속을 들여다보며 ‘고백록’ 흉내 내는 연말 글쓰기를 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히틀러 핑계를 대던 요제프와는 다른 앞날을 꿈꾸는 저와 당신이기를!


이 글은 <복음과 상황>(http://www.goscon.co.kr/)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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