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이인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안중근 의사가 자주 쓰셨다고 기억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잘살기’를 추구하는 시대에 애써 ‘거친 잠자리’와 ‘식은 밥’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를 보더라도 가장 먼저 우리의 욕구는 ‘부드러운 잠자리’와 ‘따뜻한 밥’에 머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끔 ‘거친 잠자리’와 ‘식은 밥’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느 날 우리가 만나는 이들 중에 가장 거친 잠자리와 식은 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톨릭 수도자의 삶이라면 우리는 항상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따뜻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한 이들을 돌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삽니다. 아무도 홀로 외로이 죽어가는 이들이 없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 곁을 지키고자 하는 초심이 우리들의 정체성입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지 매 순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감이나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도 맞바꾸어서는 안 되는 마음입니다. 현실에 충실하고 내 앞에 있는 죽어가는 이 한 사람,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명예를 얻거나 재화를 쌓거나 이름을 날리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몽당연필이라 하신 마더 테레사 수녀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난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려 했다면 난 4만명을 돌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하는 선우경식 의사 선생님도 다른 의사들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자선병원에서 일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환자야말로 의사가 해줄 것이 가장 많은 환자다.’ 실제로 그분은 환자의 처방전에 약보다는 밥, 용돈, 목욕, 옷, 잠자리 등을 쓰시고는 했습니다.
저 또한 올해는 제 앞에 나타나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현장이 거친 잠자리와 식은 밥이 놓여 있는 자리라 할지라도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손까리따스 수녀(가톨릭 마리아의작은자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