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란과 무정란
달걀에는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습니다. 똑같은 달걀인데도 어떤 달걀은 병아리를 낳지만, 어떤 달걀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인생을 사는데 매일 불평불만이나 늘어놓으며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고 감사해서 사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정란과 무정란은 구별이 어렵지만 제게는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웃느냐 웃지 않느냐’를 보면 됩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즐겁게 웃고 수다 떠는 가운데서도 언제나 딱 한 사람만 인상을 쓰고 있다면, 이 사람은 무정란의 인생을 살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사람은 밥을 먹어도, 누구와 대화를 나눠도, 도대체 즐겁지가 않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해서 웃지 않는 게 아닙니다.
머릿속이 온통 근심, 걱정으로 가득해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근심이 쌓이면 웃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 중에 96%는 일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랍니다.
저는 성당뿐 아니라 개신교회, 사찰, 관공서, 대학, 심지어 이역만리 아프리카, 유럽, 브라질, 아르헨티나에까지 가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합니다. 다양한 부류의 새로운 청중에게 강의를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 하든 3분 정도만 지나면 청중이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제 강의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비법이 뭐냐고 묻는데,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구라도 경계심을 풀고 경청합니다. 웃음은 유정란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잘 웃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태오복음 6장에 이르시기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걱정은 웃음도 가리고 희망도 가리니, 우선 걱정을 내려놓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십시오.
유정란과 무정란을 구별하는 두 번째 방법은 ‘감사하느냐, 감사하지 않느냐’를 보면 됩니다. 아내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은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거야. 당신은 어쩜 그렇게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여? 이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예술이야. 혹시 당신 여기다 마약 탔어?”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으면, 아내는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예술작품 만들 듯이 요리를 하게 됩니다. 세상은 감사해야 할 일이 천지지만 제일 먼저 자기 삶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진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유정란과 무정란을 구별하는 세 번째 방법은 ‘감동하느냐 감동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미국 서부지방에 있는 유타 주를 일주일 동안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브라이스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델리컷 아치 같은 수많은 협곡과 고원지대가 있는 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관광지입니다.
이 여행을 주도한 사람은 74세 된 마틸다라는 분인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돈만 생기면 여행을 가는, 인생 자체를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분이 저와 함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간 적이 있는데, 제가 거기서 너무 행복해하니까 유타 지역 일대를 돌아보는 여행을 다시 준비했던 것입니다.
마틸다는 저에게 좀 더 멋진 곳을 보여주는 완벽한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3,0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오가며 세 차례나 사전답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일곱 번이나 왔다 갔다 한 거리이니 그분의 정성이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틸다는 멋진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가도 경치는 안 보고 저만 쳐다봤습니다. 본인은 이미 많이 봐서 더 감동할 게 없으니 저의 감동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위암수술을 받은 뒤로 매일매일 감사와 감동 속에 살아갑니다. 가을에 단풍을 보면 ‘올해도 예쁜 단풍을 한 번 더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 ‘저 아름다운 별을 다시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제가 이렇게 감동이 기본인 사람인데, 세계 최고의 협곡이라는 그랜드캐니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으니 어땠을까요? 가는 곳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 그랜드캐니언. 사진 이병학 기자. 한겨레 자료 사진.
“오 마이 갓! 여기 죽인다! 너무 멋있다! 정말 좋다!”
제가 이렇게 엄청나게 감동했기에, 나중에 함께했던 일행 모두가 참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의 메마른 감정에 오염될 우려가 있으니 가급적 멀리해야 합니다.
유정란이냐 무정란이냐 구별하는 네 번째 방법은 ‘나누느냐, 나누지 않느냐’입니다. 저는 2013년부터 아프리카 잠비아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봉사활동이지, 그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례 준 치과의사 선생님께 잠비아에는 치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많은데, 치과병원이 없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며칠 걸리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데 이틀, 오는 데 이틀 걸리니 적어도 보름 정도는 계획을 잡아야 한다고 했더니 병원 문을 그렇게 오래 닫아두는 건 부담이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은 좀 미안했던지 대신 2,000만 원을 봉헌할 테니 잠비아 사람들을 도와주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치과의사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돈도 봉헌하고, 나랑 같이 잠비아도 가야 돼!”
결국 호주 멜버른 강의에서 만난 치과의사와 인천에서 일하는 또 다른 선생님까지 세 분이 봉사단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잠비아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뽑아낸 썩은 치아를 보니 한국인들 치아보다 한 배 반이 길었습니다. 잠비아 사람들의 치아가 그렇게 크다 보니 썩어도 뿌리가 깊어 빼지를 못하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 치과의사가 썩은 치아를 빼주고 치료도 그냥 해준다는 소문이 나자 10시간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밤새 달려와 진료소 앞에 줄을 지어 기다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환자들이 너무 많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간 세 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며 식사시간에도 밀려오는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저녁에 파김치가 된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돈만 봉헌하겠다던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로 20년을 살았지만, 지금처럼 기뻤던 적이 별로 없었어요. 돈은 많이 벌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환자하고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에 너무 지쳐서 사는 재미도 없었는데 여기 와서 아픈 사람을 도와주니 힘들게 공부해서 치과의사 된 보람을 느끼네요.”
사람은 자기 재능을 나눌 때 빛이 납니다. 잠비아에 있는 농장으로 봉사활동을 간 대학생들도 그랬습니다. 한 달 동안 10만 평이나 되는 농토를 가꿔주고, 닭장을 지어주는 일을 하면서 난생처음 진짜 보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 따라간 60대 아주머니들은 한 달 동안 봉사하고 돌아와서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했습니다. 이분들 역시 유정란이 분명합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눌 때 진짜 행복을 맛보는 유정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유정란입니까, 무정란입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무정란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살아가는 방법을 당장 바꿔볼 생각을 하십시오. 엄청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웃음, 감사, 감동, 나눔’이라는 유정란의 4대 조건만을 찾아내면 됩니다. 일상 속에서 이미 웃고, 감사하고, 감동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