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회 변론에서 박대통령쪽 서석구 변호사가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라고 탄핵 사유를 부정했다.
서 변호사는 “국회가 (탄핵안이) 다수결로 통과됐음을 강조하는데,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 다수결이 언론 기사에 의해 부정확하고 부실한 자료로 증폭될 때 다수결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수결이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옳다. 다수결이라고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에서 그렇게 독배를 마시고 죽자 제자 플라톤은 민주정치에 환멸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예수를 죽인데 일조한 이들이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의 역적이 되어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소크라테스나 예수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날 총을 맞아 죽은 안중근 의사와 박정희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과 같다. 다 알다시피 안중근은 일본의 심장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해 사형장에서 일제의 총에 맞아 숨졌지만, 박정희는 딸보다 어린 여자들을 농락하며 날마다 환락에 빠져지내다 심복의 총에 맞아 죽었다.
아직 독배를 마시지도, 십자가를 지지도 않았는데 굳이 둘과 비교되고 싶다면 비교해줄 수 밖에 없다. 소크라테스나 예수와 박근혜가 가장 다른 점은 앞 선 두 성자가 신화를 벗어던진 이들었던데 반해, 박근혜는 신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수가 아닌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죽었다.
박근혜의 신화는 물론 아버지 박정희다. 그는 박정희 신화를 붙들고 살아왔고, 그 신화 덕에 대통령이 됐고, 그 신화 덕에 관저에서 연예프로나 보고, 혼밥을 먹고 혼삶을 누리고 국정을 농단해도 신화를 우상화하는 이들에 의해 늘 보호받을 수 있었다.
박근혜는 1997년 한나당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했다. 그 때 그는 “국민과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으켜세우신 나라인데, 어떻게 하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가, 참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이루 금할 수가 없습니다. 뭔가 저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이 나라에 될 수 있다면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고 했다. 그가 이듬해인 1998년 4월 치러진 대구 달성 국회의원 선겅세 펼침막으로 내건 구호도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꽃 피운다”였다.
당시 정치부 기자였던 나는 정치인으로서 그의 첫 선거연설을 듣기 위해 대구 달성의 한 학교 유세장에 갔다. 그때 상대는 국민회의 부총재인 엄삼탁이었다. 박근혜는 유세에서 시종일관 아버지 박정희의 얘기만 했다. 아마 자기 얘기나 자기 공약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설의 시작도 박정희, 중간도 박정희, 끝도 박정희였다.
신화는 신화일 뿐 현실이 아니다. 어둠은 빛이 나타나면 사라지듯이 신화는 실체가 드러나면 사라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박근혜의 가장 큰 공적은 ‘박정희 신화를 깨는 것’이 될거라고 말해왔다.
소크라테스야말로 그리스신화 시대를 전복한 인물이다. 당시 그리스는 신화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을 하거나 국가의 중대사 모든 것을 무당이 결정했다. 그 신화 시대를 끝내고 이성의 시대를 열었던 이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등에(gadfly)’라고 했다. ‘등에’는 쇠파리처럼 시끄럽고 톡 쏘는 곤충이다. 자장가를 불러주기는커녕 잠들거나 취해 있지 못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경고음을 내며 성찰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깨어있게 하는 것이다. 최면속에서, 신화 속에서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싫은 소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블랙리스트로 정리해 아예 어떤 꼴도 보려하지않았다. 아버지 박정희가 경고음을 내는 이들을 간첩과 빨갱이로 뒤집어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감옥에 넣은 것처럼 그 또한 경고음을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않았다.
예수도 구약의 신화시대에 기대 예배당을 농단했던 사제들을 보고 예배당을 뒤엎은 인물이다. 그렇게 감히 신화에 도전했기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또 그들과 박근혜가 또 다른 결정적인 점이 있다. 그들은 정말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변명조차 안했다. 소크라테스 당시 아테네의 감옥문은 거의 잠겨있지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외국으로 방명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보석금을 내고 나올 수도 있었고, 도와주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독배를 마셨다.
예수는 그토록 억울하게 죽어가면서도 “하나님,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국정을 농단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나라를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반성할줄 모르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상대를 다시 음해하는 그에게 뭐라 할까.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
“그는 자기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