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박득훈 목사,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평가하다
들어가며
2016년 10월 초였다. <복음과상황> 편집부로부터 전혀 예상치 않은 요청을 받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2017년 한 해 동안 가톨릭 신학자인 김근수 선생과 글로 나누는 대화를 연재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마침 내가 섬기는 새맘교회 수요일 저녁 모임에서 한 성도의 제안으로 김근수 선생의 마태복음 해설서인 《행동하는 예수》를 몇 달에 걸쳐 읽고 나눈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게다가 우리 교회 선교부는 ‘박득훈이 묻고 김근수가 답하다’라는 대담 프로그램을 이미 기획해 놓은 상태였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신기했다. <복음과상황>의 요청을 받으면서, 《행동하는 예수》에서 읽은 한 대목이 떠올랐다.
요즘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슬퍼하는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거한 부부가 나름 각자 살 만한 모양이다. …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하느님이 바라시겠는가. 하느님은 슬프시겠다.(김근수, 《행동하는 예수》 (메디치, 2014), 706쪽.)
이 글을 읽으면서 맘이 참 짠했던 터였기에 두 말 없이 잡지사의 제안을 덜컥 받았다. 헌데 첫 글의 주제가 “개신교 목회자의 눈으로 본 루터의 종교개혁”이란다. 아뿔싸, 내가 계산 잘못했구나! 예수님께서 일찍이 망대를 세우려 하면 그걸 완성할 만한 역량이 자기에게 있는지 먼저 앉아서 셈하여 봐야 되지 않겠느냐, 말씀하셨건만…. 하지만 어쩌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어질 김 선생과 진솔한 글의 대화를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가 아름답고 건강한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픈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루터에 대해 가톨릭 신학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껄끄러울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몇 가지 훈훈한 경험 때문이다. 2007~2008년 어간으로 기억되는데, 몇 번에 걸쳐서 수녀님들 교육 과정에 강사로 초대를 받아 기독교경제윤리를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환대받은 추억이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 남아 있다. 한 수녀회에서 선물로 받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공인한 《성경》을 지금도 종종 참조한다. 게다가 요즘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오히려 오늘의 루터 같은 생각이 든다. 가톨릭교회에서 저런 말씀을 해도 괜찮을까, 혹 목숨의 위협을 받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될 정도다. 특히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개혁적 발언과 행보를 서슴지 않는 게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론 김근수 선생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 대담을 나눌 때,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김근수 선생님께 루터는 어떤 분입니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즉각적인 답이 나왔다. “네, 아주 고마운 분이죠. 오늘의 가톨릭교회가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죠.” 덕담 차원을 넘는 진심이 느껴졌다.
가톨릭 신학자와 대담을 시작하려다 보니 이래저래 들어가는 말이 길어졌다. 이제 진지하면서도 편한 마음으로 오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내 역량이 닿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다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배울 점,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왜곡, 루터의 종교개혁이 지닌 한계가 그것이다. 먼저 배울 점부터 시작해보자.
» 500년전 종교개혁의 불을 당긴 루터
종교개혁의 시작점: 철저한 자기 성찰과 신학적 발견
루터는 면죄부를 공격함으로써,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로워진다는 교리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그 교리를 터득했고, 특정 형태의 면죄부를 판단하는 데 그 교리를 적용했을 뿐이었다.
(Owen Chadwick, The Reformation (Penguin Books, 1964), p. 47. (필자 번역))
흔히 역사가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원년으로 1517년에 주목한다. 그해 10월 31일 소위 면죄부에 관련된 ‘95개 논제’를 교회 앞에 공개함으로써 대대적인 논쟁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를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인용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의 진정한 시작점은 95개조 논제의 공개 자체가 아니라 루터 자신의 신학적·신앙적 개혁에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루터는 자신의 죄와 엄청난 씨름을 거치며, 말씀 연구를 통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발견했다(롬 1:17). 그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이 제 아무리 많은 공로를 쌓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둘째,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진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다. 루터는 새롭게 발견한 복음 진리에 비추어 면죄부에 나타난 신학적 오류 즉 왜곡된 공로 사상을 정확히 잡아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루터의 면죄부 비판을 루터 이전에 있었던 면죄부 비판과 구별 짓는 특징이라 할 것이다.
한국교회 개혁에 헌신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이 점을 루터에게서 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새롭고 건강한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하고, 개혁운동의 와중에도 그 정체성을 잘 지켜 내야 한다. 거기에 실패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왜곡되기 십상이다. ‘한국교회는 썩었고 나는 깨끗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성찰하지 않게 된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자기 의에 사로잡힌 아주 이상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란 책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노라면, 그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싶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존재들은 괴물이라 할 수 있다. 그 괴물들은 심연, 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 모든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광명의 천사가 되어 정열적으로 활동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선 온갖 더러운 짓을 꾀하고 실행에 옮긴다. 교회개혁운동을 하다보면 바로 괴물들이 활동하는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의 악행을 포착해낸다.
그런데 무서운 건 그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내가 주체고 심연이 객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심연이 주체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나는 오히려 그가 바라보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 심연은 내 깊은 곳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는 심연을 건드려 활성화한다. 물론 겉으로 볼 땐 난 여전히 영락없이 교회 개혁자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선 교묘하게 탐욕을 추구한다. 개혁자로서의 명예를 탐하여 은근히 다른 사람을 짓밟는다. 영적 독선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을 무시한다. 결국 교회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괴물은 음흉한 승리를 쟁취한다. 사실상 이런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 왔다.
그러므로 루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교회개혁운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치열한 자기 성찰, 성경에 대한 묵상과 연구를 통해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바로 확립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개혁운동의 와중에서 그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개신교회가 회복해야 할 ‘저항의 영성’
오늘의 한국개신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꼭 배워야 할 두 번째 요소는 그가 온몸으로 보여준 ‘저항의 영성’이다. 슬프게도 대다수 한국교회에선 도무지 저항의 영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교인들 거의 대다수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온유와 겸손, 바울이 가르친 국가권력에 대한 순종은 저항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회나 사회에서 지도자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교인들은 나서서 저항해선 안 되고, 그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런 생각과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지배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되었다. 그래서 개신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하지 않는가? ‘저항자들의 종교’란 뜻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개신교회의 지배세력은 교인들에게 절대 저항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가르침이니 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간 내내 한국개신교인들이 루터가 보여준 저항의 영성을 온 몸으로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터는 당시의 교회법, 스콜라신학, 철학과 논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채워 놓지 않는 한 교회는 결코 개혁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당대의 교종과 지배동맹세력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로마는 1520년 6월 15일 루터를 정죄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루터의 주장이 이단적이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루터의 책을 발견하는 즉시 불태워야 한다며, 루터에겐 두 달 이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루터는 그해 12월 10일 오전 9시 비텐베르크의 시민들과 대학교 구성원들이 보는 앞에서 교회법 관련 서적들, 그리고 교종의 교령들과 교서를 불태웠다. 1521년 1월 3일 그의 파문이 확정되었다. 그럴수록 루터는 오히려 더욱 단호해졌다.
난 (1519년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논쟁에서) 콘스탄스 공의회가 후스의 주장 중 일부 즉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부분을 정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을 철회한다. 그의 주장 전부가 기독교적이다. 그를 정죄함으로 교종은 복음을 정죄한 것이다. (Chadwick, The Reformation, p. 55. (필자 번역))
그는 결국 1521년 1월 23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소집한 보름스 의회에 출두 명령을 받는다. 그 당시 루터가 남긴 각각의 편지들엔 그의 결연한 저항의지가 담겨 있다. (Roland Bainton, Here I Stand (Lion Publishing plc, 1978), p. 179. (필자 번역))
단순히 철회를 목적으로 초청된다면 나는 가지 않을 거라고 황제에게 답할 것이다.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철회뿐이라면 바로 여기서도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황제가 나를 죽음으로 초대한다면 난 갈 것이다.
보름스 의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철회선언을 할 것이다. 전에 나는 교종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했다. 그걸 철회한다. 나는 이제 교종은 그리스도의 적이며 악마의 사도라고 말한다. 그런 각오로 보름스 의회에 참여한 루터는 너무나 유명한 선언을 한다.
성경과 명백한 이성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난 교종들과 교회 회의들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 잡혀 있다. 난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거니와 철회할 뜻도 없다. 내 양심을 거역하는 건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멘. (Roland Bainton, Here I Stand (Lion Publishing plc, 1978), p. 185. (필자 번역))
루터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진리 수호를 위해 그리고 교회개혁을 위해 당당하게 부패한 교회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국가권력에 맞서 저항했다. 핍박과 죽음을 각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작센의 선제후 프레드리히 3세의 도움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 덕에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지만 말이다.
오늘 한국개신교회에야 말로 이러한 저항의 영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사실 저항적 영성의 원조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아모스를 비롯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의 저항적 영성을 이어받아 완성하셨다. 예수님이 결국 체포당해 로마제국의 사형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것은, 당시 부패한 유대교 지배세력과 그들이 결탁한 로마제국의 통치에 결연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저항을 빼놓고 십자가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 십자가는 반드시 왜곡된다. 저항의 상징인 십자가가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지배세력에 순응해야 하는 신학적 근거로 둔갑해버린다. 얼마나 무서운 왜곡이요 거짓인가? 그렇게 뒤틀린 십자가 신학과 신앙이, 불의의 세력에 항상 타협해온 대다수 한국교회를 정당화해온 것이다.
루터의 저항적 영성을 회고하며 우리는 역설적으로(루터는 야고보서를 무시했기에) 야고보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약 5:10, 새번역) 예언자들은 당대의 부패한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주님의 이름으로 저항했고 그 결과 고난을 당하면 기꺼이 참아내었다. 올 한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예언자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이제 500년이 흐르면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개신교 안에서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살펴볼 차례다.
세 가지 “오직”의 왜곡
잘 아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세 가지 “오직”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다. 종교개혁 당시 이 세 가지 “오직”은 너무나 중요하고 올바른 명제였다. 부패한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무언가 한 쪽으로 너무 강하게 치우쳐 있으면,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선 그 반대편으로 매우 강하게 잡아당겨야 할 필요가 있다. 틀린 방향으로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은 16세기 초반 ‘중세적 고딕신앙의 불안’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었다.(김회권,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 신학자의 단상,” <복음과상황> Vol. 313 (2016년 12월), 10쪽.) 그와 더불어 ‘오직 은혜’는 부패한 면죄부 판매의 원천이 된 그릇된 공로사상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으며, ‘오직 성경’은 부패한 교종과 교회회의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500년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 상황은 바뀌었다. 세 가지 “오직”은 새로운 정황에 비추어 마땅히 새롭게 해석되어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창의적으로 적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에 실패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오직”의 본뜻과 취지마저 왜곡되어 왔다.
첫째, ‘오직 믿음’은 이웃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죽은 믿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루터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행동과 실천을 지나치게 무시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95개조 논제 중 특히 41~45조를 보면 루터의 ‘오직 믿음’이 결코 ‘죽은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41조는 “교종의 면죄부가 다른 사랑의 행동들보다 더 선호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교종의 면죄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설교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44조에선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통해 성장하며, 그로 말미암아 사람은 더 선해진다. 하지만 면죄부를 통해선 사람이 더 선해지지 않으며 다만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본회퍼가 잘 보여준 것처럼 루터에게 ‘오직 믿음’은 결코 죽은 믿음에 대한 신학적 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릇된 공로사상에 대한 도전이자 죄책에 시달리는 자에 대한 위로요, 동시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한 순종의 길이었다.(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SCM, 1948), pp. 35-47. 손규태 옮김, 《나를 따르라》(대한기독교서회, 2010).)
둘째, ‘오직 은혜’는 본회퍼가 정확하게 간파한대로 ‘값싼 은혜’로 전락했다. ‘오직 은혜’가 원래의 취지인 그릇된 공로사상에 대한 교정의 차원을 넘어, 은혜를 받은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신학적 원리로 둔갑한 것이다.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대가나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아주 값싼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는 다시 95개조 논제 중 91~95조를 보면 루터에 대한 명백한 왜곡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루터는 92조에서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되게 ‘평화,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들을 멀리하라”고 권고한다. 93조에선 그 반대로 “‘십자가, 십자가’를 외치는 예언자들은 모두 복되다”고 선언한다. 94조에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되 형벌과 죽음 심지어는 지옥을 경험하는 데까지 부지런히 따르도록 권고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95조에선 사도행전 14:22의 바울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된 평화가 주는 안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그러니 한국개신교회는 루터에 기대어 오직 은혜를 값싼 은혜로 둔갑시켜온 무서운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셋째 ‘오직 성경’은 온갖 잘못된 신학과 신앙을 절대화하는 자의적이고 선별적인 문자주의로 전락했다. 새로운 버전으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기복신앙을 살펴보자. 담임목사의 절대적 군림 그리고 리더십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신앙적 논리, 아니 심지어 목회자의 성범죄를 가볍게 생각하게 만드는 근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 근저에는 저마다 성경구절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그리곤 ‘오직 성경’을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이는 ‘오직 성경’의 원리가 기존의 잘못된 주장에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억압적 장치로 타락한 것이자, ‘오직 성경’에 대한 사악한 왜곡이다.
루터는 물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첫 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의 원리란 게 성경은 그저 문자적으로 읽기만 해도 언제든지 그 참뜻을 기계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다만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과 전통을 분쇄하기 위한 원리였다. 보름스 의회 심문관 요한 에크는 의회에서 루터에게 다그쳤다. “마르틴, 그대는 어떻게 그대만이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가? 어찌 그대의 판단을 그렇게 많은 유명인들의 판단 위에 올려놓고는 그들 모두보다 그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Bainton, Here I Stand, p. 185. (필자 번역)) 에크는 교회의 유구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성경에서 빗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열어 놓지 않은 셈이다. 루터는 여기에 도전하고 저항하기 위해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지금 교회가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과연 성경이 증언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인가를 점검하고자 했던 것이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이란 원리에 기대어 누리고자 했던 이러한 ‘지적 자유’의 본질을 신학자 T. F. 토런스가 잘 정의해준다. 곧 “현재의 입장에서 돌이켜 언제든지 모든 선입견과 전제들을 다시 성찰하고 모든 전통적 개념들을 시험해볼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를 뜻한다고 말이다.(Thomas F. Torrance Theological Science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p. 75. Anthony C. Thiselton, New Horizons in Hermeneutics (Harper Collins, 1992), p. 186에서 재인용함.) 루터는 그런 자유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해석적 도구를 사용했다. 자신이 판단할 때 그리스도를 가장 명확하게 가리키는 본문을 기준으로 삼아 성경 전체를 해석했다. 그런가 하면 성경 본문이 그것이 쓰여진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해석했다. 예컨대 구약 유대 백성의 신정정치와 관련된 본문들을 고스란히 16세기 비(非)유대 정부로 옮겨 적용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물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루터의 이러한 해석적 방법이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시공을 통틀어 모든 성경 해석자와 신학자에게 공통적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바로 이런 점이 모든 시대의 성경 해석과 신학적 작업에 살아 움직이는 새로움과 흥미로움 그리고 깊이를 더해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허용하신 바라고 생각한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금 개혁되려면 이 점을 깊이 배워야만 한다. 기존의 전통적 주장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탐욕 혹은 불안과 염려에 이끌려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가 아닌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건전한 의심을 품고 성경을 재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해석적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도 되고 때론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보여주신 것처럼 자기의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순종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다.
그런 의지를 갖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 하나님의 참된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다(요 7:17).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각종 질병으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한 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억압하는 기존 질서에 부딪히면 위험할지라도 기꺼이 그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요 7:19~24). 그렇게 살면서 성경을 읽다보
면 기존의 전통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용기 있게 그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는 개혁되고 하나님의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이제 마지막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이 지닌 한계를 아주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루터와 종교개혁의 한계: 개인주의와 보수주의의 경향성
루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단독자로 대면해 믿음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을 발견했다. 그로 말미암아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권위주의적 계급 질서를 타파해나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제임스 던을 비롯한 소위 ‘바울신학의 새 관점’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잘 보여준 것처럼 거기엔 개인주의라는 한계가 있었다.(James D. G. Dunn & Alan M. Suggate, The Justice of God: a fresh look at the old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Eerdmams, 1993), pp. 5-29.)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다 보니, 바울 자신이 처했던 역사적 맥락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치열하게 씨름했던 바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음식법 등의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이 되어야만 참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다. 바울은 이에 대항하여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히 구원을 누리는 의로운 자가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루터의 이신칭의에 대한 개인주의적 이해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신칭의를 통해 하나님께선 특정 혈통, 피부 색깔, 사회적 지위, 문화나 관습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란 점을 깨닫자는 뜻이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를 개혁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진리다. 같은 믿음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 부차적 요소들로 인해 부당한 차별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산층 내지는 부유층의 문화와 생활습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혹은 지적 수준이 웬만큼 되는 그룹에 속해야 교회지도자로 쉽게 인정받는 건 아닌가? 이신칭의의 진리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함으로써, 자신과 단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여 무시하거나 폄하하던 관행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 루터의 종교개혁엔 소위 두 왕국론에 근거한 사회윤리의 보수주의적 성향이라는 한계가 드리워져 있다. 그 성향은 그의 <강도와 살인을 일삼는 농민에 반대하여>라는 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물론 루터가 농민들의 고통과 억울한 형편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로마서 13:1~7에 근거하여, 아무리 정의로운 이상을 추구할지라도 국가권력에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부하는 무서운 죄악으로 간주한 것이다. 루터에게 혁명에 가담한 농민들은 강도와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제후들에게 그들을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라’고 권고한다. 그렇게 폭력적인 진압작전을 펼치다 죽는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다 죽는’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복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루터의 한계는 기존의 지배질서를 하나님이 정하신 정의로운 질서라고 너무 쉽게 간주한 데 있다.
농민혁명을 부당하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질서에 대한 정의로운 항거라고 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는 기존 질서를 일단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라고 간주하고 다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인격적 관계의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
‘내 제품을 자기 마음에 내키는 가격 혹은 가능한 한 비싼 가격에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옳고 적절한 가격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 그대의 장사행위는 그대의 이웃을 위하여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법과 양심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대의 행위가 이웃을 해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R. H. Tawney,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Penguin Books, 1922), pp. 103-104. (필자 번역))
루터로선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보는 게 공평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개신교회는 루터의 한계에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나 당위가 없어졌다. 다수의 의지에 따라 한 국가의 질서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수 그룹에 속해 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또한 일정하게 갖고 있다. 혁명도 성공하면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며 억눌린 사회적 약자의 눈으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 그 안에 매우 급진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바로 ‘오직 성경’의 원리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나가며
이제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기대어 그의 종교개혁에 대한 개신교 목회자로서 나의 단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루터가 <독일민족의 기독교인 귀족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만인제사장설을 제창한 건, 사제들이 부패했으니 교회개혁은 평신도 몫이라는 걸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 두레교회 오세택 목사님과 내가 강사로 참여한,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주관하는 7주간의 교회개혁 제자훈련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였다.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의 부패와 파괴적인 분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다 답을 찾기 위해 제자훈련에 참여한 한 성도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교회개혁의 공은 평신도에게 넘어온 것 같아요. 이번에 국민의 힘으로 국격(國格)을 세운 것처럼, 예수님의 면은 아무래도 우리 평신도가 세워드려야 할 모양이에요.” 나는 순간적으로 기쁘게 반응했다. “이번 교회개혁 제자훈련은 대성공이네요.”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내며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이 한국개신교회 개혁의 주역으로 일어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박득훈
한국 개신교의 교회개혁운동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성인이자 목회자. 한국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연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으나, 선교단체를 통해 예수와의 깊은 인격적 만남 이후 경제학보다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몰두했다. 영국 런던바이블칼리지(현 런던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국제장로교회(IPC)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경제정의’를 주제로 기독교사회윤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새맘교회 전임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로 섬기면서 한국 사회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을 깊이 고민하며 삶으로 씨름하고 있다. 《돈에서 해방된 교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