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자 덕질기
조현의 히말라야 트레킹 체험기①
외로우니까 혼자 걷는거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인 조현 기자
여행이 운명론처럼 정해져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뜻하지않은 사건을 만나면 ‘이것도 하늘의 뜻이려거니’하고, 항로를 벗어나볼 필요도 있다. 그때부터가 진짜 여행이다.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갈 때만해도 ‘그 좋다는’ 포카라의 페와호수에서 나룻배나 타며 요양할 셈이었다. 그런데 포카라행 항공편이 기상악화로 결항이란다. 숙소를 찾던중 만난 한 청년이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했다고 자랑한다. 포카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댓명이 의기투합해 함께 13일간 안나푸르나 5416미터 트롱라를 넘고 200여킬로미터를 완주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쿵했다. 설산이 시야에 가득찼다. 10년전 달라이라마 제자 청전스님과 함께 인도 라다크의 5080미터 싱고라를 넘을 때 너무 무리해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생고생을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설산이란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병이 나 휴직한 몸으로 트레킹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이란 안가면 후회할 것이란 뜻이다. 다만 안나푸르나에 묻힌 산악인 박영석 대장처럼 설산에 묻힐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버리려, 하고싶은 일마저 버릴 수는 없다. 두려움은 달래며 안고가야할 어린아이지 버리는게 아니다. 여차하면 설산에 묻히리. 찬란한 설산을 거닐다 피라미드보다 수만배나 큰 무덤에 안기는 것을 어찌 불운이라고만 할것인가. 병석에 누워 죽어가는것보다는 나은게 아닌가. 겁많은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다니. 그래 이왕 가는김에 가이드도 포터도 없이 혼자 가보는거다.
안나푸르나 초입 베시사하르에서 입산허가증을 발급받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하산객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등산객은 입대하는 군인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데, 하산객들은 해탈한 제대병의 표정이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오긴 오는걸까. 그 때부터 걸었다. 먹고 걷고 자고 걷고 또 걸었다.
외롭지않느냐고? 외롭다. 그래서 혼자 가는거다. 인간에 대한 지겨움에서 해방돼 인간들을 그리워하려 그리 하는거다. 철다리를 넘은 가토라는 마을에 객은 나뿐이었다. 어둠에 잠긴 롯지(숙소)에서 만두와 라면을 안주삼아 현지 막걸리인 창을 마시는데, 화톳불가에 불을 쬐던 야크몰이꾼 둘이서 군침을 흘린다. 그들에게 창 한잔씩을 돌리니, 눈동자에 별빛이 반짝인다. 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서로 별이 되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