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무관심의 세계화’ 비판하며 ‘형제애’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 불법 이민자 밀항지 람페두사를 첫 방문지로 선택
“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2013.07.15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좌 이후 첫 방문지로 유럽으로 가려는 북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의 밀항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선택했다. 교황은 지난 8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주에 속한 람페두사를 방문해 ‘불법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이민자들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과 형제애를 촉구했다.
람페두사는 튀니지로부터는 불과 120㎞ 거리에 있어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곳인데,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8,400여 명의 이민자가 이 섬으로 피신했고, 교황이 방문한 당일에도 166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이 섬으로 밀항해 왔다. 이민자들은 대개 구명조끼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없이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며 정원을 넘어선 배를 타고 밀항을 시도하는 만큼 사고의 위험도 높다. 2012년 9월에는 튀니지 이민자 136명이 타고 가던 배가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전복돼 50여 명만 구조됐다.
▲ 람페두사 미사 중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Mass of the Pope at Lampedusa)
고통 받는 이웃과 연대하는 사람들,
“소수지만 연대의 본보기 보여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주자들이 바다에서 죽어가고 있다. 희망의 배가 죽음의 배가 되고 있다”며 이주민들이 빈번히 겪는 비극을 알고 나서 “줄곧 심장이 가시로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교황은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내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하며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양심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론에 앞서 교황은 람페두사와 리노사의 주민들, 여러 연대단체의 봉사자들과 안전요원 등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이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는 모든 이들”을 격려하며 “여러분은 소수입니다만, 연대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고맙다”고 말했다.
교황, 비극적 상황 초래한 ‘익명성의 야만’ 비판
“주님께 ‘슬퍼하는 은총’을 청합시다”
한편, 교황은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하며 “우리 현대인들은 이웃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언급하신 사제와 레위인의 위선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형제를 보면 아마도 “가련한 영혼이여!” 하고 말하며 그냥 가던 길을 가버릴 것이라고 염려했다.
“안락을 추구하는 문화는 오직 우리 자신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사랑스럽지만 허상 가득한 비누거품 속에 살도록 합니다. 그것들은 이웃에게 무관심하게 만드는 덧없고 공허한 망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참으로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끄는 것입니다.”
교황은 “나한테는 영향 없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이웃의 고통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모습을 지적하며,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 모두를 무책임한 ‘익명의 사람들’로 만든다”고 말했다. 여기서 교황은 인간 역사의 여명기에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하신 질문을 상기시키고 “이 질문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지시는 질문”이라고 말하면서, 교황은 “누가 이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세 번째 질문으로 덧붙였다.
“여기 형제 · 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이 (죽음의) 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누가 울고 있습니까? 어린 것들을 안고 있는 이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 남자들을 위해서 누가?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고통’ 말입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버렸습니다!”
교황은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 자신만의 안락을 보호하기 위하여” 헤로데가 뿌린 죽음의 문화를 지적하며, “우리 가슴속에 숨어있는 헤로데를 없애 주십사 주님께 청하자”고 제안했다. “우리의 무관심을 슬퍼하고, 세상과 우리 마음의 야만성을 슬퍼하며, 또한 지금과 같은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결정들을 용납하는 익명성의 야만에 슬퍼하는 은총을 주십사 주님께 청하자”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누가 울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세상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며 긴급하게 요청되는 ‘형제애’를 호소했다.
* 기사 중에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원문은 문규현 신부의 번역을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