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심정에서]
“고전의 향기를 이웃과 나누세요” 부인 유언에 화답한 동지 겸 남편
동지이자 벗이었던 서혜란, 이남곡 부부
7월6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만해엔지오교육센터에서 ‘서혜란 추모 토크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창립의 주역인 서혜란 선생님은 휴심정 필자 이남곡 선생님의 부인입니다. 둘은 결혼해 첫아이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민주화운동의 동지이기도 하지요. 토요일인데도 이화여대와 생협 선후배 동료 등 100여명이 찾아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를 기렸습니다. 육신은 가도 그의 정신과 향기는 지인들의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더군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동지였던 부부는 ‘운동’을 떠나 인간 내면과 관계의 중요성을 간파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들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무소유공동체인 산안마을에서 공동체원으로서 8년간 지내다가, 2004년엔 전북 장수의 산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가 생협에 공급하며 살았습니다.
지혜는 감춰두고 늘 입보다는 귀를 열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인 부부였지요. 부부는 10대와 20대 때 품었던 이상을 60이 넘도록 놓지 않을 만큼 바보스럽고 순진무구했습니다. 제가 10년 전 신문사를 1년 쉬고 인도로 떠났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삼겹살과 소주를 사들고 가장 먼저 장수의 산골로 찾아간 것도 태고의 때묻지 않은 향기가 그리웠기 때문이었겠지요. 햇볕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상대방의 얼굴을 밤하늘의 별처럼 쳐다보던 천생연분 원앙 한쌍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무욕의 삶은 두 아들에게까지 이어져 첫째 승엽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산골에 들어와 장독살림을 맡았습니다. 둘째 태영은 와이엠시에이(YMCA) 간사를 하다가 올해부터 신촌민회 사무국장으로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눈을 감으며 그토록 사랑한 남편에게 ‘고전을 읽고 그 향기를 이웃들과 나누는 인문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부인의 소원대로 지난해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을 내고, 논실마을학교에서 ‘좋은 이웃들’과 주경야독을 하고 있습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