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
안다, 다만 모른 척할 뿐
내가 속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196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호스피스의 개념을 도입하고 강릉의 갈바리의원과 포천의 모현센터의원, 서울에 있는 모현가정호스피스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을 돕고 있다. 죽음은 죽는 자의 것만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슬픔과 고통이기에 1990년부터는 사별가족 돌봄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을 한 이들의 모임인 ‘샘터’,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 ‘피에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모임인 ‘옹달샘’도 있다. 그런데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슬픔이다.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빠를 잃은 아이들에게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충격을 받는다고, 크면 모든 걸 이해하게 된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금방 잊을 거라고, 아빠는 급하게 외국 지사 발령을 받아서 떠났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인 그 아이들은 정말 그것을 모를까? 1년 반이 지난 뒤 ‘옹달샘’을 통해 아이들의 사별·상실·슬픔을 다루었을 때 그 아이는 ‘다 알고 있었어요. 나도 아빠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고 실컷 울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위해 계속 모르는 척 연극을 해야 했기에 한번 실컷 울어 보지도 못한 것이다.
어느 가족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2년 동안 아무도 아이에게 엄마의 사망을 알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물어보면 어두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그저 울기만 했다. 고등학생 누나에게 물어보면 누나는 성질을 내면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6살짜리 그 아이는 ‘아, 엄마에 대한 것을 물어보면 안 되는구나’라고 스스로 포기하면서 자랐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모든 것을 다 잊고 잘 자란다고 믿고 있었다. ‘옹달샘’에서 이 아이는 검은 바다를 그린 후에 ‘아기 공룡이 바다에 빠져 있어요. 엄마 공룡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도와줄 거예요’라며 찰흙으로 큰 칼 하나를 만들고는 ‘누가 엄마를 잡으러 오면 이 칼로 찔러 죽일 거예요’라고 하면서 울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살려내라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 나도 아파요. 나도 슬퍼요. 나도 알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죽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기억을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새엄마, 새아빠, 비싼 장난감, 맛난 것, 과한 용돈, 무제한의 게임을 제공하면서 사별의 기억을 억지로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