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아이들도 죽음을 안다

$
0
0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

안다, 다만 모른 척할 뿐


슬픈아이1.jpg


내가 속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196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호스피스의 개념을 도입하고 강릉의 갈바리의원과 포천의 모현센터의원, 서울에 있는 모현가정호스피스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을 돕고 있다. 죽음은 죽는 자의 것만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슬픔과 고통이기에 1990년부터는 사별가족 돌봄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을 한 이들의 모임인 ‘샘터’,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 ‘피에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모임인 ‘옹달샘’도 있다. 그런데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슬픔이다.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빠를 잃은 아이들에게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충격을 받는다고, 크면 모든 걸 이해하게 된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금방 잊을 거라고, 아빠는 급하게 외국 지사 발령을 받아서 떠났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인 그 아이들은 정말 그것을 모를까? 1년 반이 지난 뒤 ‘옹달샘’을 통해 아이들의 사별·상실·슬픔을 다루었을 때 그 아이는 ‘다 알고 있었어요. 나도 아빠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고 실컷 울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위해 계속 모르는 척 연극을 해야 했기에 한번 실컷 울어 보지도 못한 것이다.


어느 가족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2년 동안 아무도 아이에게 엄마의 사망을 알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물어보면 어두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그저 울기만 했다. 고등학생 누나에게 물어보면 누나는 성질을 내면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6살짜리 그 아이는 ‘아, 엄마에 대한 것을 물어보면 안 되는구나’라고 스스로 포기하면서 자랐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모든 것을 다 잊고 잘 자란다고 믿고 있었다. ‘옹달샘’에서 이 아이는 검은 바다를 그린 후에 ‘아기 공룡이 바다에 빠져 있어요. 엄마 공룡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도와줄 거예요’라며 찰흙으로 큰 칼 하나를 만들고는 ‘누가 엄마를 잡으러 오면 이 칼로 찔러 죽일 거예요’라고 하면서 울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살려내라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 나도 아파요. 나도 슬퍼요. 나도 알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죽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기억을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새엄마, 새아빠, 비싼 장난감, 맛난 것, 과한 용돈, 무제한의 게임을 제공하면서 사별의 기억을 억지로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