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요리.
요리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요리를 못하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널리 알려져있는 조리법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만든다.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요리를 위해 재료를 사지 않고, 있는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한다. 만들기 시작할 때 생각한 요리와, 완성된 요리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창의요리의 정의를 만들자면 이런 내용일 듯하다. 연기자이자 미술작가, 작곡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혜선. 그는 '신혼일기'라는 방송에 출연 중인데, 그가 방송 중 보여준 여러 요리에 '창의요리'라는 이름이 달렸다. 일에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생각하거나 사고하는 방식도 자유로워 보이는 그답게 창의요리를 가능케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인 것같다.
*창의요리 중인 구혜선. tvN <신혼일기> 중에서
양파, 양배추, 마요네즈, 케찹, 딸기잼 등을 겹겹이 어수선하게 쌓아올린 샌드위치. 만든 그와 그의 남편에 따르면 엄청 맛있다고. 팥죽을 만들려고 졸이던 팥에 설탕을 섞어 빵에 발라먹은 팥빵. 고기대신 스팸을 굽고, 녹색 고추가 아닌 빨간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는 쌈밥. 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다른 재료를 모두 꺼내놓고 영감이 이끄는 대로 잘라 볶아 한중일 3국의 맛을 담은 덮밥. 무가 많으면 무로 무밥, 무국, 무볶음 등 무 일색으로 차린 대담한 한상 밥상.
*구혜선의 창의요리들.
그의 요리들을 보며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요리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이제까지 나에게 요리란 조리법대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간장 한 큰술, 고추장 두 큰술 등의 세세한 양까지 따르지는 않지만 고춧가루와 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드는 요리인지,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드는 요리인지 등은 정해진 조리법을 따르는 편이다. 내 취향에 맞는 요리책 4~5권을 구비하고 있는데, 책을 보고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나온 조리법을 따르기도 한다.
요즘 한창 쑥이 나오고 있는데 쑥을 이용한 요리를 검색하면 대부분 쑥된장국와 쑥버무리, 쑥튀김이 나온다. 요리책과 인터넷 검색에서 모두. 쑥된장국도 해먹고, 쑥버무리까지 해먹었다. 튀김은 번거로워서 하지 않으므로 패스. 버무리만 해도 쉬운 요리는 아닌데, 쑥으로 할 요리가 별로 없어서 굳이 해서 먹었다.(불린 쌀을 방앗간 가서 가루로 빻아와야 했다)
두 종류의 요리는 해먹고 나면 딱히 더 해먹을 방법이 없어서, 남은 쑥은 누렇게 시들어가기 일쑤였는데 '창의요리'를 접하고 난 후 생각에 물꼬가 트였다. 그렇다! 꼭 알려진 방법대로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계란 푼 것에 쑥와 양송이버섯을 잘라 넣어 쑥스크램블을 해먹었고, 쑥과 청양고추를 넣어 쑥전을 해먹었다. 맛도 만족스러웠고 재료를 묵히지 않아 뿌듯했다.
요리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요리하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번엔 어떻게 요리해먹을까나'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나를 한겹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이 해체된 것 같은 해방감마저도 들었다.
*쑥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들. 크렌베리를 넣은 쑥버무리와 쑥스크램블, 쑥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 나같은 사람도 이럴 정도지만, 내 주변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요리에 대한 고정관념은 더 심한 듯 하다. 그들은 대부분 요리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요리에 자신이 없어 레시피대로 따라했는데 그런데도 맛이 없으니 '해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아예 겁을 먹는다.
요리포기자들의 공통점은 요리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요리에 전혀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해도 정말 맛이 없게 되는 한 친구는 요리를 무슨 '법칙'처럼 생각한다. "나는 콩나물을 아삭하게 못 삶아. 내가 하면 안익거나 뭉개져. 나는 레시피대로 해도 국이 간이 안맞아. 내가 하면 뭐든지 안돼."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은 콩나물의 아삭함의 정도에는 최상의 상태에 해당하는 어떤 정확한 수치가 있고, 국의 간을 맞추는 데에도 소금 1술, 멸치액젓 1.5술식으로 고정된 어떤 황금비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런 '정답'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식에는 그러한 정답이라는 것이 없다. 기른 환경에 따라 콩나물 조직의 단단함 정도가 매일 다르고, 간장과 멸치액젓도 기본 재료의 질과 만든 환경 등에 따라 농도나 맛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만드는 방법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요리를 하다보면 사실 그런 규칙은 하나의 참고 항목에 그칠 뿐, 실제로는 만드는 상황에 맞게 융통성있게 할 수밖에 없는 열린 과정이다.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감에 따라 한발씩 나아가야 하는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창의요리는 친환경적인 장점 또한 갖고 있다. 있는 재료를 어떻게 써먹을까를 생각하므로, 재료가 남아 버려지는 경우가 적다. 특정 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를 사게 되면 여러가지를 아무래도 많이 사게 된다. 이 요리를 하기 위해선 레시피에 나온 이 재료가 필요하므로 이런이런 재료와 향신료 등을 사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요리 한번 하자고 산 향신료나 부재료를 한번쓰고 팽개쳐두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베트남쌀국수 해먹는다고 산 피쉬소스나 중국요리 한다고 산 두반장 같은 것들. 이탈리아 요리한다고 산 허브종류도 그렇다.
있는 재료를 알뜰히 쓰는 창의요리는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식욕중심주의가 보이지 않아 좋다. 있는 것에 맞추겠다,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이것저것 사들이지 않는다는 태도 말이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말도 생겼지만, 별 거 없는 것같아도 잘 뒤져보면 냉장고에는 사다 놓은 재료들이 은근히 많다. 새로 무언가를 사서 채우기 전에 일단 냉장고를 파먹으며 창의요리를 해보자. 아마 적어도 1~2주일치는 거뜬히 나올지도 모른다. 식품 구입비도절약하고, 요리를 통해 창의성도 발휘하고, 환경도 보호하고. 생각만 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