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북부
산은 그저 높은 고개일 따름이다.
산 아래 사람은 산정을 올라가려 하고 산정에 선 사람은 내려가려 한다. 히말라야나 카라콜람 산맥의 해발 5천m급의 고개에 서면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 몰아치는 눈보라를 피해 내려가려고 한다. 나지막한 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산정에 선 사람은 저 계곡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돌아간다. 그 무리에는 앞서거나 뒤따르거나 높고 낮은 고개를 넘나들었던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경론을 옮긴다며 책상머리 밥상머리 수평 이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인도를 쏘다녔고 티벳 고원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을 건넜다.
그리고 황해를 가로질러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제일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았다. 그 때 투르판에서 만났던 한 현지인의 “늑대가 나타난다.”는 말 때문에 인적 없는 고비 사막에서 마른 나무 등걸을 긁어모아 모닥불을 피우며 잤던 밤이 생각났다. 싸구려 빠이주 한 병을 마시며 괴성을 지르며 모닥불 주위를 미친 듯이 춤추던 밤, 침낭 하나에 의지하여 비박을 하면서 서티벳 알리에서 산 람보 칼을 품고 잤다. 늑대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서였다.
» 파수 빙하 아래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산 아래의 계곡, 평지이지 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려올 줄 알면서 산을 오르고 돌아올 줄 알면서 떠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 또한 일상인 셈인가? 어찌된 영문인지 정도의 차이가 매우 심한 떠돎이었다. ‘지상에 한 평의 땅이 없어 하늘을 떠돌기로 했다’며 ‘물결 파(波)’를 써서 스스로 파천(波天)이라 칭했더니 의형이 ‘부술 파(破)’자가 떠오른다며 그윽한 길을 뜻하는 ‘담정(覃程)’이라 호를 지어주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의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명호 하나 바꾼다고 성정이 바뀌는 일은 섬진강 백사장에 심어둔 군밤에서 싹이 나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 다만 ‘그윽한 길’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종종 떠올려볼 따름이다.
1993년 맨 처음 비행기를 타고 티벳을 향했을 때는 만취의 연속이던 하계 졸업 직후였다. 당시 배낭 여행자들의 성소였던 홍콩의 충킹 맨션의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구룡반도 앞바다에 섰을 때는 어떻게 날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걸무드에서 티벳의 수도 라싸로 올라갈 때 고산병에 걸려 파란 오줌을 누며 티벳 고원에 올랐다. 앞으로 티벳 불교 공부를 하게 될 운명이 기다릴 줄 모른 채 새외변방의 하나인 서장 포달랍궁의 라마의 밀종대법, 금강대수인 정도의 비전절기가 전부였다.
» 스카루드 가는 길
그리고 이듬해 11월 법현과 현장, 혜초가 넘었고 마르코 폴로가 ‘너무 높아 하늘에는 나는 새가 없는 곳’이라는 불렀던 파미르 고원을 넘었다. 전생에 경전을 지고 파미르를 넘던 노새였다가 천장단애 아래로 불경을 떨어뜨린 죄로 금생에 그걸 다 옮겨야 되는 업을 지었다고 말하곤 한다.
삶이 언제나 현재적이라고?
남인도에서는 50도가 넘는 날씨에도 자전거를 탔고 타이어가 녹아 튜브가 튀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달렸다. 티벳 고원의 5천미터 고개를 자전거를 밀며 오르고 우박 속에서도 자전거를 밀었으나 지나온 길 따위야, 따위야 …. 일부러 떠오르려고 해도 힘든 기억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고(苦)는 현재적인 것이고 그 현재적인 것 또한 다만 흐르고 흐를 뿐이다.
한 곳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세계 시민의 둥지(Nest of world citizen)’인 ‘평화의 땅’ 샨띠
니께딴, 어찌 그곳에서 10년을 앉아 있었는지! 인도 불교의 역사와 그리고 그것이 티벳으로 넘어가 어떻게 오늘날 세계 불교의 일원이 되었는지를 샨띠의 ‘현장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갠지스 강의 모래 하나만도 못하는 지식의 첫 단추를 꿴 곳은 오직 그곳에서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 카라콜람
“샨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다리를 건넌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다리를 건너올 수 있게 남겨두고자 한다. 그러나 혹시나 다시 그 다리를 건너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봐 지나온 다리를 끊어버리고 살았다.
“3년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다만 사부님을 생각하면 한번쯤은 반드시 돌아가 드릴 말씀이 있다. 올해 아흔 일곱이신 사부님, 경론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경이감에 달뜨시고 제자들에게 미소를 베푸시던 사부님 …. ‘『중론』, 『회쟁론』 등 『중관이취육론』을 제가 모두 옮겼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시(三時)가 자성을 가진 것임을 부정하는 중관학자가 현재의 바로 여기도 아니고 두고 온 샨띠의 그곳도 아니고, 다만 사부님에 대한 그리움에 머무르다니! 불법(佛法)의 길을 이끌어주셨던 사부님 생각만이 떠나온 그곳, 샨띠를 그리게 한다. 과거의 현재, 그 그리움과 옛 떠돎으로 ‘인도 20년’을 시작한다. 누에가 실을 뽑듯이 지난 이야기를 내보일 필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섬진강 백사장에 심어둔 군밤에서 매화가 피기 전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꾸준함, 끈기 그 하나만으로 옛 일들을 추슬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