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법대로 하라고!
세상에는 수많은 겨루기가 있다. 꼬맹이들의 딱지치기로부터 동네 고샅에서 벌이는 닭싸움, 초등학교 운동회 마당의 청백전, 온갖 시합, 심지어 나라와 나라가 벌이는 전쟁까지. 우리는 이런 갖가지 형태의 겨루기에서 이해득실의 직접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외자로 관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양한 구실과 이유를 들어 편을 가르고 응원을 한다. 겨루기의 양상이 격해지고 우열이 엇비슷하면 구경꾼의 가슴도 덩달아 달아오르고, 때로는 응원하는 사람들의 패싸움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민주주의 선거제도 또한 투쟁과 유희가 기묘하게 배합된 겨루기의 일종이다. 모두가 이해 당사자이며 끝나도 몸살과 후유증이 훨씬 오래 지속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는 인류 역사의 빼어난 성취가운데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저 그림은 엄청나게 비싸고 난잡하며 때로는 조악하고 비루하기조차 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지경이다. 정치혐오를 유발하는 주제에 정치 리더, 지도자? 누가 누구를 어디로 끌고 간다는 거야?
이천 육백년 전에 형성된 불교 경전 속에 선거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믿기지 않을까? 원시공동체의 확장과 분화 변천을 설명하는 장아함 세기경(장부 니까야 제27경 Aggañña-sutta)에 따르면 먼 옛적 사람들은 배고프면 그때 그때 들에 나가 먹거리를 취해 살아갔다. 그러던 중 어떤 게으른 친구가 꾀를 내어 내일 양식을 미리 가져다 쌓아두면서 한꺼번에 많이 쌓아놓기 경쟁이 벌어졌고, 이어 토지의 분배와 사유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전에 없었던 ‘도둑질’이라는 말이 생기고, 이로 인한 다툼을 해결할 사람이 필요했다. 하여, 자기네 무리 가운데 잘나고 힘센 사람 하나를 뽑아 들판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조정하는 임무를 맡기고 그 대가로 소득의 일부를 떼어주었는데 그가 ‘마하삼마타’라는 최초의 크샤트리야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세습 왕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대중(mahā)이 인정한(sammata), 즉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그들이 뽑은 마하삼마타가 잘나고 힘센 사람인 것은 공동체와의 약속을 어긴 자를 응징할, 위임된 폭력을 행사할 적임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집행하는 일꾼이지 지도자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경전(본생담)에서 ‘정의로운 왕’에 대한 질문에 고타마 붓다께서는 “거짓과 분노, 웃음을 자제할 수 있는 왕”이라고 답하신다. 주석서는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는 자들에게 앙심을 품지 않고, 때 아닌 웃음을 보이지 않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야흐로 온갖 떨거지가 떼거리로 설쳐대는 시절, 역겹다고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두 눈 부릅뜨고 봐줘야 한다. 우리가 뽑을 사람은 지도자도, 법의 수호자도 아니다. 다만 법대로 일하는 머슴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 어디 쉽게 찾을 수 있을까마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 일삼는 자, 제 역성을 들지 않았다고 꼼꼼하게 앙갚음하고, 때 없이 실실 웃는 자는 제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쩌다 어겼다 해도 얼른 사죄하고 부끄러워하는 일꾼이라면 훗날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칭송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재연 스님(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