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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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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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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함께 타고 가는 농촌의 부부.   사진 <한겨레> 자료



1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시인의 시 <경운기를 보내며>이다. 나는 이 시를 대할 때마다 삶의 작은 일상들 앞에 숙연해진다. 드물고 비싼 것이 아니라 흔하고 소소한 것의 귀함을 다시 생각한다. 더 나아가 세상 만물이 그것 자체로 본디 신령스러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소소한 사물 하나하나에 경건과 정성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하늘을 우러를 수 없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시인의 통찰에 나는 공감한다.

그렇다.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하고 사랑으로 만난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편견과 차별을 거두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이해관계와 기호에 따라 선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별한다는 것은, 자칫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 두지 않거나 밀어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별하는 행위가 무언가를 소외시키는 일과 동의어라면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길은 함께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선별을 넘어 더 정밀한 보편으로 가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영화 <워낭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촌로에게 소와 자신은 차별 없는 하나였다. 소와 사람의 관계를 지배와 예속이 아닌, 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있는 촌로의 사랑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이 아닌가. 그는 뙤약볕에서 힘들게 일하는 소에게 미안해하고, 소가 아프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은, 끌어안고 같이 아파하는 것이다. “보살의 병은 대비(大悲)에서 생긴다”는 유마경의 설법이 <워낭소리>를 보는 내내 울림이 되어 떠나지 않았다.

23년 동안 자기를 위해 헌신한 경운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잔을 올리며 이별을 고하는 농부의 마음도 이런 것이다. 무정물인 기계에도 사랑을 불어넣었던 그의 삶의 태도는 대비의 실천이다. 그에게 경운기는 일방적으로 부림을 당하는 소모적 도구가 아니었다. 고마운 삶의 동반자였다. 경물(敬物)할 수 있는 자만이 경천애인(敬天愛人)할 수 있다. 사랑을 불어넣으면 무정물도 생명이 되고 한 호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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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  사진 <한겨레> 자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약자와 소수자가 지독한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차별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법이 일부의 극한 반대로 입법이 좌절되고 말았다. 장애, 성적 지향, 출신 국가와 민족, 거주지, 인종, 종교 등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입법의 요지다. 차별 금지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이라는 높은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법이 통과되지 못하는가. 다수의 독점과 담합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뿐이다. 나아가 다수가 주류이고 옳다는 생각은 과연 합당한가. 2007년과 2010년에 이어 올해도 제정이 무산된 차별금지법은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쳐 통과되어야 한다. 평등과 사랑은 법으로 보호받고 사람의 가슴으로 나누어야 한다.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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