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책임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 비전
2013.07.18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6억 그리스도교도들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가
열린다. 분단된 한반도가 새 인류
문명 시대를 여는 ‘산고의 땅’이라는
진실을 깨닫기를 기대한다.
금년 한국의 가을 하늘이 높아지는 10월 말, 부산 항도에서 중요한 국제적인 큰 잔치가 열린다.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부산총회가 그것이다. 세계 140개국 교회 단체 대표들이 모여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표어를 내걸고 12일간(10월28일~11월8일) 국제대회를 연다.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을 흔히 일컬어 ‘에큐메니컬 운동’이라고 하는데 ‘에큐메니컬’은 헬라어 ‘외쿠메네’라는 말에서 왔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다.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평화와 사랑’의 종교라고 자처하는 교회가 분열하고 기독교 울타리에 갇혀서 마땅히 할 일을 못했다는 회개를 진지하게 했다. 그리하여 결성된 기독교 교회들의 연합단체가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이다.
한국 같은 종교 다원 사회에서, 일반 사회인들이나 이웃 종교인들은 기독교계 집안 잔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G20 서울 정상회의’, ‘평창 겨울올림픽’, 그리고 ‘부산 국제영화제’ 못지않게 개최지 한국으로서는 중요한 국제대회임을 인지해야 한다. 세계의 지도적 성직자, 사상가, 전문 분야 석학들,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깨어 있는 지성인들 수천명이 모여 지구촌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협의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열린 신앙을 지닌 개신교 교회, 동방정교회, 아프리카 콥틱교회, 그리고 영국 성공회 등이 정식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므로 약 6억명 신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인다. 공식 대의원을 비롯하여 참관인, 언론인, 자원봉사자 등 외국인 약 7000명이 회동할 예정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도 세계교회협의회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그리스도교의 세계적 공의회라 하겠다.
창립할 때부터 세계교회협의회는 세 가지 기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일치 운동, 복음 선교 운동, 사회봉사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위 세 가지 목적은 191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세계선교협의회가 열렸을 때부터 지속해온 공통 목적이다. 세 가지 목적을 바탕에 깔고서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된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수레바퀴는 뚜렷한 두 가지 바큇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의 두 가지 비전 때문이다. 하나는 ‘책임사회’ 비전이요, 다른 하나는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다. 비전이란 추구하는 꿈이자 열정이고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 운동의 지향성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7년마다 열리는데, 1948년 창립총회부터 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까지 주악상(主樂想)은 ‘책임사회’였고, 그 이후부터 제10차 부산총회까지 주악상은 ‘지속 가능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동성에 귀 기울인다면, 책임사회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열망하는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데, 그것은 ‘정의와 사랑’의 동시적 실천을 요청하는 예언자 종교의 현대적 표출이라고 보아야 한다.
‘책임사회’ 비전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냉전체제로 양분되면서 기획통제적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인간들과 국가사회한테 강요하는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 지도자들은 확신하기를 복음 안에서 자유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도와 법질서 마련에 있어서 자율적이며 책임적 존재라는 것을 주장했다. ‘책임사회’ 비전은 자유·평등·평화·복지의 사회 실현을 통해 ‘인간화’를 추구하자는 사회윤리적 의지 표현이었다. ‘제3의 길’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둘 중 어떤 체제도 기독교의 비전과 곧바로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 비전은 1970년대 중반기부터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심 화두가 된다. 인류는 1970년대 초부터 자연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 붕괴 등 심각한 문명사적 위기를 깊이 자각했다. 자연에 대한 배려와 생명 가치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같은 무한 경쟁, 가속화되는 생산 소비 생활 패턴, 전쟁무기 생산 판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경제 질서 등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이 타계 지향적 영혼구원론에만 치우치지 않고, ‘오늘의 구원’과 정의·평화·생명 가치가 존중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 실현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 기독교계는 진보 계열인 교회협의회 쪽과 보수계열 교단 사이에 불협화음이 들린다. 불협화음의 근본 원인은 세계교회협의회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오해하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세계교회협의회 세계대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모임이라는 점이다. 두 공의회가 교회를 갱신하고 봉사하는 교회가 되자는 점에서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 그러나 본질적 차이가 있는데 세계교회협의회는 교리신학, 전례, 윤리 규범을 새롭게 제정하여 회원 교회들이 의무적으로 수용하게 하려는 목적은 창립헌장 속에 애초부터 없다는 점이다.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은 ‘다양성 안에서 일치’ 정신을 가지고 인류 형제가 당하는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까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평신도·성직자 공동 참여적 대회이다. 바른 교리에 대한 관심보다 바른 실천에 더 관심을 쏟는다.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대표들은 총회 개최 장소를 구하지 못해서 한국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세계 냉전 구도의 희생양이 되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 전형적 종교 다원 사회이면서도 종교 간 평화와 협동을 이루고 있는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민주시민의 저력이 돋보이는 나라, 바로 그 한국의 현장을 보고 경험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대회 장소를 정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를 반대하는 기독교 보수계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복음 진리의 파수꾼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운동이 용공주의·종교다원주의·인본주의로 병든 기독교 운동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기독교 울타리 밖에서 보면 왜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면서 병자를 치료하느냐고 예수를 비난하고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을 연상케 한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 2:27)라는 예수 말씀을 명심할 일이다.
대회준비위원회 지도자들도 행여 한국 기독교의 물량적 성장을 과시하려는 행사 위주의 대회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물량주의 교회 성장론과 반공 논리에 사로잡혀 사랑의 실천이나 남북 화해 촉진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고, 책임사회 및 지속 가능한 사회 비전을 지니고 교회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날씨는 분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 못한다”는 기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엄한 비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교단이 대승적 관점에서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에 함께 협력해야 마땅하고, 국민과 정부도 따뜻한 마음으로 외국 대표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가 본래 목적을 이룸과 동시에 덧붙여 두 가지를 기대하고 싶다. 첫째, 동서 문화가 조우했던 동아시아의 한국은 다양한 세계 종교 문화의 최종 정류지로서 인류의 미래 종교 시대를 열어갈 영적 저수지란 것을 참석자들이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둘째, 실질적으로 세계전쟁이었던 ‘한국전쟁’에서 희생양이 되어 분단된 한반도가 새 인류 문명 시대를 여는 ‘산고의 땅’이라는 진실을 깨닫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가 동북아 및 세계 평화의 돌쩌귀이기 때문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