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9. 인간과 사회 탐구, 제로에서 시작한다
내가 잘 알아도 “손나 간지데스”(그런 느낌입니다)
» 일본 애즈원사람들은 거의 매일 속말을 털어놓는 `제미'라는 모임을 갖는다. 맥주를 마시며 `제미'를 하는 사람들
세계 최대 공동체 야마기시에셔
개인 배려보다 조직 논리 앞서자
두뇌들 변혁 한계 느껴 이탈
인근 스즈카에 ‘애즈원’ 만들어
규율이나 의무 없이 약 200명
일 강박 없이 즐기는 공동체살이
인간과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해
본질탐구하는 ‘사이엔즈’연구소와 스쿨
화 부르는 고정관념 에서 벗어나
속말 쏟아내는 ‘제미’ 몇시간씩 나눠
도시락사업과 농장 수입 공유하며
가게 ‘조이’에서 무료로 식료품 가져가
» 일본 전통 다다미 방에서 차를 마시며 `제미'를 나누는 사람들
일본 나고야 주부공항에서 배편으로 한 시간이면 소도시 스즈카에 닿는다. 그곳에선 독특한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 인류가 전에 만들어본 적이 없던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실험이다. 화도 다툼도 없고, 죄와 벌도 없으며, 어떤 사람이든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느긋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상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얘기를 현실에서 실현하겠다고 나선 곳은 ‘애즈원 커뮤니티 스즈카’다. ‘애즈원’(As one)은 비틀스의 ‘이매진’이란 노랫말 가운데 ‘세계는 하나가 될 거예요’(The world will live as one)에서 따온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지금까지 간 아속이나 오로빌이나 브루더호프처럼 한마을공동체가 아니다. 스즈카컬처스테이션, 즉 문화센터 같은 본부를 중심으로 이들이 사는 4채의 집과 기숙사, 일터인 도시락 가게와 농장 등이 스즈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한 지갑’으로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커뮤니티’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니 공동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의 모태는 야마기시다. 야마기시공동체 가운데서도 한때 3천여명이 살 만큼 세계 최대 공동체마을의 하나였던 도요사토는 이곳에서 불과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애즈원의 주축은 한때 이상사회의 모델로 여겨져온 야마기시를 이끌던 두뇌집단들이다. 야마기시에서도 머리 좋기로 손꼽히던 이들이 왜 이미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구축한 야마기시를 탈출해 맨몸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험고를 자처한 것일까.
애즈원의 주축들이 잔뼈가 굵었던 야마기시에 대한 이해 없이 이들을 알 수는 없다. 야마기시즘의 정신적 뿌리는 야마기시 미요조(1901~61)란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길가에서 자신이 무심코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은 한 어른이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자기를 죽일 기세로 달려오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사람은 왜 화가 나는 것일까’란 화두를 품었다고 한다. 탐구하고 또 탐구한 끝에 그가 도달한 화의 원인은 ‘고정관념’이었다. 인간은 주워들은 지식이나 경험, 문화에 의해 ‘이래야 한다’거나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데, 자기만의 그런 기준에 어긋날 때 분노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고정관념’이란 틀에 갇힌, 감옥의 죄수라는 것을 직시한 셈이다.
스즈카의 센터 구실을 하고, 문화센터처럼 모임, 강의, 전시회, 옷을 나누는 바자회 등을 여는 애즈원의 스즈카문화센터
» 애즈원 사람들은 누구나 품목을 적은 뒤 무료로 식료품 등을 가져갈 수 있는 가게 `조이'
한때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의 수배를 받아 양계장에 숨어들었던 그는 그곳에서 ‘상생의 세계’를 발견했다고 한다. 농작물들은 인간과 닭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인간과 닭은 그 먹거리로 건강해지며, 다시 배설물을 거름으로 자연에 돌려줘 순환하며 서로 번영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이라는 틀’ 속에서 갇혀 있지 않고 상생하는 순환농법을 보고는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한다’는 이상을 제시했다. 야마기시즘에 대한 호응이 커지면서 이를 삶에서 실현하기 위한 ‘실현지’라는 공동체마을이 일본 30여곳을 비롯해 브라질, 스위스,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50여곳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1966년부터 7박8일의 야마기시즘 특강이 열렸고, 1984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산안(야마기시) 마을이 세워졌다. 야마기시는 국내 공동체·환경·생명운동과 수련 프로그램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야마기시 미요조는 자신에 대해서도 교조화를 거부하며 종교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어떤 진리나 이데올로기라 하더라도 독선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무에서 탐구해 ‘무고정(無固定) 전진’ 하며 나아갈 것을 희망했다. 지금은 정당들의 모임에서까지 따다 쓰는 ‘연찬’(硏鑽)이란 말은 야마기시즘에서 나온 것이다. 연찬은 ‘연구해 뚫는다’는 의미다. 이미 정한 결론을 관철하기 위한 ‘회의’나, 대충 논의하다가 ‘하모니’란 이름으로 얼기설기 결론을 맺는 것이 아니라, 끌텅을 캘 때까지 대화해보자는 것이다.
과연 그의 희망대로 고정관념 없이 열린 자세로 최상의 것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고정 전진’은 고차원 종교뿐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는 기업들까지도 추구하는 ‘이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국가나 종교, 주의는 사랑과 자비, 조화, 행복 같은 이상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은 독선화한 이데올로기만 남아 갈등과 대결, 폭력의 주체가 되기 마련이다.
야마기시즘은 이런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자신도 그런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야마기시에서 철학적 이론을 제시하는 간부였다가 2009년 스즈카에 합류한 사카이 가즈키(56)는 “야마기시가 너무 커져 조직이 굳어지면서 변혁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연찬마저 타성에 젖어 ‘열린 대화’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야마기시에도 처음엔 이상사회를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이 모였고, 한명 한명은 나쁜 사람이 없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가 줄면서 계속 변화해갈 수 있는 힘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것이 노년의 평안한 삶을 모색해야 할 나이에 평생 가꾼 공동체를 뒤로하고 야마기시를 탈출한 이유라는 것이다.
또 애즈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든 이탈 사유는 야마기시의 ‘제안과 조정’ 문제였다. 가령 공동체원들이 외부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여행을 간다거나 무엇을 사겠다고 제안을 하면 조정위원들이 조정을 해서 결정을 하는데, 한명 한명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조직의 논리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들이 상처를 입곤 했다는 것이다.
애즈원 사람들의 수입원인 `어머니도시락'. 도시락을 만들거나 쉬는 모습. 그리고 단 한개를 주문해도 배달해주는 배달차.
하지만 공동체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들의 새로운 도전은 쉽지 않았다. 모토야마 데루코(66)는 “야마기시에서만 살아서 바깥은 이렇게 네 것, 내 것이 엄격하고 집세가 비싼 줄을 몰랐다”며 “스즈카에 와 야마기시에서 나온 사람들끼리 가족처럼 돈을 주고받고 지내며, ‘돈이 없으면 한집에서 살고, 집도 없으면 다리 밑에서 살자’는 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런 과거를 웃으며 얘기할 만큼 이들에게도 이제 여유가 생겼다. 2005년말 시작한 ‘어머니도시락’이 하루 1천여개의 도시락을 팔아 연간 우리 돈으로 10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본식 전통가옥 등 괜찮은 집 네채도 사들였다. 그럴듯한 방문자센터도 갖췄다. 어머니도시락에선 40~60여명, 농장에선 8~15명가량이 일한다.
애즈원은 ‘커뮤니티’(공동체)라고는 하지만 규약이나 제약도, 의무나 책임도 없다. 따라서 정식 멤버 규정도 없다. 100퍼센트 이곳에 몸을 담근 이도 있지만, 시간제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른 150명 등 200명가량이 함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70여명은 어머니도시락이나 농장에서 일해도 센터 격인 ‘오피스’에 급료 전액이 자동입금되게 해놓았다. 집세와 신용카드 요금이나 세금은 오피스에서 지급하고, 필요한 돈은 오피스에서 타다 쓴다. 또 농장과 어머니도시락의 생산품 등을 가져다놓은 이들의 가게 ‘조이’에서 식료품 등을 무료로 갖다 먹을 수 있다.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쓰임새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소득을 다 맡기는 게 가능할까. ‘별로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돈을 다 써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사토시 후카다(67)는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내 것을 다른 사람이 써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보다는 ‘함께 잘 써주니 좋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사유경제 사회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희망을 앗아가는 것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도 역시 인간이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잘 알지 못하면, 이상이나 진보 등의 구호만으로 이상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한 바 있다.
따라서 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사이엔즈’다. ‘연찬’이란 말 대신 이들이 쓰는 사이엔즈는 ‘과학적 본질의 탐구’(Scientific Investigation of Essential Nature)란 영문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인간은 지능을 지닌 존재이므로 이를 최대한 활용해 인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해서, 인간답게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이엔즈연구소에서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고, 사이엔즈 스쿨에서 6박7일씩의 ‘자기를 알기 위한 코스’, ‘인생을 알기 위한 코스’, ‘사회를 알기 위한 코스’, ‘내관(內觀)코스’, 3박4일씩의 ‘자기를 보기 위한 코스’, ‘사람을 듣기 위한 코스’를 운영한다. 어머니도시락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코스에 참가할 때는 온전히 이곳에만 집중한다. 사이엔즈연구소의 후쿠다 히로야(31)는 “학교는 주로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데 그치지만 이곳은 자신과 타인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한다”고 말했다.
» 애즈원에서 일하며 사이엔즈스쿨에서 자기와 사회를 탐구하는 일본과 한국의 장기 유학생들이 `제미'를 나눈뒤 식사하는 모습
» 애즈원 사람의 가정집 식사
‘지식이나 경험이 있어도 그것을 그렇다 하고 단정하거나 전제로 하여 생각하지 않고 실제는 어떨까 하고 제로(영·零)에서부터 탐구한다.’
사이엔즈 프로그램이 열린 곳엔 이런 큰 글귀가 정면에 붙여진다. 이렇게 열려 있지 않고서는 고정관념의 쳇바퀴 도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진보니 변혁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도 역시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어디를 가나 ‘제미’(세미나란 뜻의 독일어에서 따온 말)가 이어졌다. 흔히 일본인들은 속을 잘 표현하지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랑방 담화’처럼 편하게 마음을 다 표현하는 ‘제미’에서 나오는 속말은 너무 진솔해 놀랄 정도다. 겉만 빙빙 도는 대화로 10년을 사귄 친구보다 ‘제미’를 함께 한 이들이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제미’가 무르익으면 ‘조이’에서 챙겨온 맥주와 전통과자들까지 곁들어졌다.
‘제미’를 몇시간씩 자주 하다 보니 몇가지 특징이 잡힌다. 자기가 절대선인 듯 상대를 자기 기준에서 재단해 비난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말투는 찾아볼 수 없다. 뭔가를 물으면 이들은 ‘정말은, 정말은 무엇일까요?’라며 되묻곤 했다. 자기 고정관념을 그대로 내뱉기보다는 ‘실제’에 대한 탐구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말끝마다 ‘손나 간지데스’(그런 느낌입니다)란다. 보통의 일본인들도 가끔 쓰는 말이지만 이들에겐 상용어다. 자기의 말이 객관적으로 진리가 아니라 자기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이다. 듣는 이를 안식으로 이끌어 더 진솔한 속말이 나오게 하는 주문 같은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