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프와 베레나 부부.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지난 여름 17일간 머물렀던 미국 브루더호프로부터 오늘 아침 슬픈 메일을 받았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지도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르놀트 장로가 지난 15일 소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 전날인 14일 성금요일에 전세계 공동체가 그분과 함께 마지막 성만찬을 했다는군요. 그 분의 마지막 말씀은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였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100여년전 독일의 시골에서 부랑아, 고아, 장애인 등과 함께 브루더호프(형제들의 집)를 연 에버하르트 아르놀트(1883~1935)의 손자이자, 오늘날 브루더호프를 세계적이고 조화로운 공동체로 이끈 요한 하인리히 아르놀트(1913~82)의 아들이지요.
저는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직접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 많은 지도자들 중에서도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아주 깊게 남아있습니다.
작년에 보았을 때, 크리스토프는 70대인에도 마치 90살 정도는 된 것처럼 몸이 불편해보였습니다. 걷는 것도 상당히 불편해보였지요. 옆에서 젊은이들이 부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브루더호프 지도자 크리스토프 부부와 조현 기자
그런데도 그가 사람 한명 한명을 대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대중적인 인물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앞서면, 대중을 하나로 보지, 한명 한명이 개성과 인권을 가진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한명 한명을 보지못하면, 설사 민주적인 구호를 내세우더라도, 실제 시각과 행동은 전체주의자인 경우가 적지않지요.
그런데 한명 한명에 대한 크리스토프의 집중력이 놀라웠습니다. 지난번 브루더호프 공동체 기사에서도 소개했다시피, 그는 한명 한명에게 절뚝거리며 다가서서 반기는데, 마치 죽은 자식이나 형제를 맞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맞을 때도, 제 딸을 맞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 이분이 온 마음을 다해, 온 정신을 내게만 집중해서 이렇게 환대하고 있고, 축복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쉬지않고 주로 학교에서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더군요. 그가 아이들과 나누는 교감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크리스토프와 베레나 부부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환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가난한 사람들과 상인들, 걸인들을 재워주고 먹여주며 늘 여러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던 어린시절 저의 시골집 풍경이 마치 공동체 같았다고 얘기하니, “당신의 부모님이 천국을 만드는 분”이라고 칭찬하시고는, 자신들에 대해서는 아주 겸손했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는 사진찍는 것에 알레르시 반응이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그래도 그 분과 이메일 인터뷰도 했던터라, 부부의 사진을 찍고싶어 부탁했을 때 부인 베레나는 겸언쩍어하며 “저는 별로 사진이 어디에 나고 싶지않다”고 얘기하자, 크리스토프가 부인의 손을 잡으며 “멀리서 오셨는데...좀 찍어줍시다”며 사진을 찍도록 아량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부친 요한 하인리히 아르놀트의 추도식 이후 조현기자의 딸과 인사를 나누는 크리스토픞 부부. 크리스토프는 누구를 대하든 호기심과 호나대의 표정으로 그에게만 집중했다. 사진 조현 기자
크리스토프는 용서 화해의 전도사로 유명합니다. ‘폭력의 고리 끊기’(BTC·Breaking the Cycle)를 시작한 인물이지요. 이 프로젝트는 1999년 미국에서 발생한 콜럼바인 총기사고 이후 시작한 것입니다.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뉴욕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와 등과 함께 왕따와 폭력, 총기사고 등에 멍든 중고등학교를 방문해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고 용서의 경험을 나누어 놀라운 호응을 얻어 미국에선 588개 학교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영국에서도 지난해에만 80개 학교가 함께하는 등 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우리가 용서해야하할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상처가 나머지 인생마저 송두리째 망치도록 더 둘 수는 없다.”
순찰중에 총을 맞아 장애인이 된 스티븐 맥도널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범인인 흑인 소년을 용서한 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 속에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세계적인 뮤지션인 장 폴 삼푸투는 1994년 90일 사이에 100만명이 죽은 르완다 대학살 때 부모와 세형제와 누이를 동시에 잃고 고통을 이기지못해 알코올과 마약에 손을 대며 감옥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는 오랜 분노 끝에 “늘 끌어안고 있는 두려움과 분노가 나를 죽이는 진짜 적이다”는 것을 깨닫고 용서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용서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보다는 일상사의 경우입니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용서하지 못해 괴로움에 휩싸여 사는 경우가 많지요. 그와 인터뷰에서 “현대인들은 경쟁 속에서 내몰리다보니,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상사 및 동료와 불화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어떻게 하는게 좋은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중에 살인이나 강간 같은 엄청난 일로 용서를 해야하는 상황을 겪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하지만 우리 모두 매일 배우자나 자녀, 친구나 동료를 용서해햐 하는 상황을 겪는다. 아마 하루에 수십번도 더 그런 일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용서하는 일이 극단적 상황의 용서보다 덜 어려울 수는 있어도, 절대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똑같이 중요하다. 아마도 매일 용서를 실천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다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다시는 보지 않을 낯선 사람을 용서하기는 쉬워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을 훨씬 더 힘들다. 내 아버지 하인리히 아놀드는 ‘숱하게 배신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분노와 불신에 잠겨 사는 것보다 용서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하곤했다.”
그에게 이런 질문도 했습니다. “뜻하지않게 자식이나 가족을 잃게 될 경우, ‘왜 내게 이런 일이?’라며, 살인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분노가 치밀기 마련이다. 이 때 어떻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가.”라고요. 그러자 크리스토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분노할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도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치유와 회복에 대한 희망을 걸고 누군가에게 분노를 털어놔야 한다. 결국에는 ‘받아 들임’이 하나님을 용서할 수 있게 한다. 이걸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운명에 반항하게 되고, 억지로 지게 된 것같이 느껴지는 삶의 십자가를 매번 뿌리치게 될 뿐이다. 하지만 받아 들일 때 우리의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고,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질 힘을 얻게 된다.”
오늘 크리스토프를 가장 아름답게 추모하는 것은 지금까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 내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내가 아픔을 준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내 말과 행동으로 아팠을 분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제게 아픔을 주었다고 서운해하고 미워했던 분에게 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날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