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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되지않은 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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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세계 유일의 '십일조 왕국'입니다.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개신교에 속한 거의 모든 교단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심하여 십일조를 당연시하거나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에서 십일조를 안 하고 정상적인 교인 노릇이 가능할까요. 교회 내에서 헌금이나 십일조로 인해 믿음이 부족한 자로 업신받고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그런 모멸감과 상처를 진정 이해하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부당하고 모욕적인 차별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희한한 점은 툭하면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도 서로 쉽게 갈라서며 교단 분열을 밥 먹듯이 하던 한국의 교회들이 성경적 근거가 매우 취약한 이 십일조는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왜 유독 한국교회는 십일조를 이리도 중시할까요.

 

중세 십일조의 부활은 '돈이 되기 때문'

한국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 실력이 외국 교회보다 훨씬 탁월하거나 또는 영적 단결력이 높아서일까요. 유감스럽지만 그건 아닙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십일조란 그저 교회 내에서 믿음이 좋은 아주 극소수의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특별한 헌금'정도로 인식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서는 이 십일조를 안 하거나 못 하면 '믿음이 부족한 신자'로 폄하되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런 흐름을 주도한 사람들은 목회자들입니다. 그러나 힘없는 교인들이 뭐 알겠습니까. 그냥 그럴려니 하고 구경만 했지요. 그랬더니 근자에 이르러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십일조를 안 하면 중병에 걸리거나 천국에 못 간다'고 주장하는 간 큰 목사들마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맹신적 신앙이 매우 위험한 이유입니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유는 결코 무슨 대단한 신학적인 연구의 결과도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도 아닙니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중세 교회의 면죄부 장사처럼 공교회가 맘몬적 돈맛에 심취하게 된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서 복을 받으라'는 말은 영적 사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나머지 무슨 복을 아끼실까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돈을 많이 바쳤다고 복을 주시고, 못 바치면 멸시하시는 그런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부족하셔서 우리의 재물을 원하실까요. 그런 속된 가르침은 이방 종교의 무속적 신앙일 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중에서 돈을 잘 바치고 '세속적 복'을 구하라고 가르친 사도가 단 한 분이라도 있었던가요. 만일 세속적 복으로 복음을 평가해야 한다면, 사도들은 물론 예수님까지도 모두 실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사역은 '성전 제사'와 '십일조'를 종결

특히 말라기서를 인용하며 십일조를 강요하는 목사는 지극히 용감 무식한 사람입니다. 만일 구약이 그 자체로 완전하다면 뭐 때문에 신약이 필요했을까요. 그냥 계속 동물 제사나 지내지 뭐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십자가 사역은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어 구약의 '성전 제사'와 '십일조'를 동시에 종결시킨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불완전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교권주의자들은 사도들과 개혁자들에 의해 고사된 십일조를 부활시켜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부정한 돈은 다시 교회의 대형화, 목사의 귀족화, 그리고 신도들의 맹신화를 촉진하며 교회를 변질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강요하다 멸망한 '바리새인의 길'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십일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기복적으로, 미신적으로, 그리고 교권적으로 악용되고 있는지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중세 교회도 그 길을 가다가 몰락했습니다. 십일조가 아무리 교회의 살림에 긍정적 역할을 하더라도 성경적으로 정당치 못하다면, 점차 우리의 신앙을 해치고 결국은 교회 자체를 허물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한국교회는 이미 속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거룩한 울타리 속에서 양들은 오늘도 울고 있습니다. 목동들의 털깎기에 추워서 떨며 웁니다. 이리들에게 찢기고 아파서 웁니다. 상처 입은 형제들을 보며 분통해서 웁니다. 배가 고파 울고 삶에 지쳐 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웁니다. 언제부터인지 착한 목동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배부른 목동들이 웃고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의와 인과 신은 사라지고, 돈과 세력과 교권이 판을 칩니다. 스스로 '종'이라던 목동들이 목자를 배신하고 양들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양들만 우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이신 예수님도 함께 우십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멸망한 예루살렘보다도 더 큰 죄악을 우리가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요적 종교 활동의 역기능

한국교회의 금전적 부패가 매우 치명적인 이유는 '구조적인 헌금 강요'가 은밀하게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인위적이며 암묵적인 헌금 강요가 예배 속에 위장하거나, 조직 속에 숨어서 은근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그나마 비교적 정통인데 '사역'은 갈수록 사이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탈북하신 분들이 교회에 와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북한이 싫어서 나왔는데 도리어 교회가 너무 북한 사회 같아서 싫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대부분 수 년 내에 교회를 떠납니다. 은근히 헌금을 강요하는 분위기나 강압적인 종교 활동이 사람을 질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요. 세상은 바보가 아닙니다. 교인이 괜히 줄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상식을 버리면 세상은 교회를 버립니다. 세상이 돈의 노예가 되고 돈에 찌든 개신교를 비웃고 있다는 말이지요.

교회는 무슨 세무서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이든 돈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교회란 정상적인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교회이고, 아울러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신 예수님을 멸시하는 교회일 뿐입니다.

왜 오늘날 교회에서 가난한 장로들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요즘 장로님들은 전부 물질적 축복을 듬뿍 받아 그런가요. 아니지요. 교회가 돈으로 직분을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장로가 되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전엔 교회와 장로님들이 가난해도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비록 협소한 예배당이지만 오손도손 모여 예배하고, 이웃에 복음을 전하고, 물질을 나누고, 그리고 사람을 키웠습니다. 세상의 칭송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난한 교회에서 경건하고 성실한 신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주의 제자된 성도들의 믿음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요. 교회가 헌금을 바르게 걷고 바르게 사용하면 성숙한 성도들은 더욱 기쁘고 신이 나서 열심히 헌금을 할 것입니다. 설사 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형제나 가난한 교인들이 헌금 좀 덜 내면 어떻습니까.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다른 교우들이 더 내면 되지요.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구태의연한 '종교적 공동체'를 청산하고 보다 '성경적 공동체'를 추구한다면, 그 어떤 교회라도 돈이 없어 쇠락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바른 헌금 없으면 바른 교회 아니다

아울러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단과 사이비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항상 십일조나 헌금을 왜곡하여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고 대를 이어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한국의 토종 이단들치고 세습 안하는 이단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또한 그런 이단들 중에 재정 장부를 공개하는 이단을 본 적이 있던가요.


정통 교단의 미자립 교회들은 다수가 문을 닫기도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단이나 사이비 교회들이 문을 닫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여코 양들을 속이고 약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른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그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여 교회당을 관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교육하고, 교역자들 생활비를 지급하고, 그리고 사회 봉사에 참여합니다. 이런 면에서 헌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교인들에게 바른 헌금의 필요성에 대해 성실하게 가르치고 그 사용에 늘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이 글은 <당당뉴스>(http://www.dangdangnews.com)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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