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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게, 자네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이따금 생각한다. 그때도 이렇게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럼 이제 그렇다고 알았으니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 표어 하나를 붙여두고 산다. “자네 생각이 그를 수도 있네!”라고. 애초 이 딱지는 여차하면 얼른 꼬리를 자르고 숨어들 보호막이 아니라 스스로 범한 오류를 얼른 인정하고 바로잡겠다는 다짐이지만, 솔직히, 오래 묵은 편견과 생각 쪼가리들은 완강하게 교정을 거부하기 일쑤다.
우리네 세상살이는 오관을 통해 들어와 쌓인 온갖 정보를 정리하고 평가, 판단하여 제 좋을 대로 실행하는 일의 연속이다. “이것이 이렇고 저것은 저러니 나는 이리 하리라!” 그런 평가와 판단, 실행의 경험은 거듭 축적되고 다음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거기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남들의 경험조차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필시 우리가 습득한 세상살이의 슬기는 대부분 간접 경험으로 채워진 것일 수도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온갖 쓰레기도 들어온다. ‘이래라저래라.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저것은 독이고 이것이 보약이다. 저놈은 마귀요 저분이 구세주라더라!’
고타마 붓다께서 한 마을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붓다께 다가가 물었다. “우리 마을에 이따금 도인들이 머물다 갑니다. 어떤 이가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합니다. 다음에 또 다른 이가 와서 ‘그게 아니고 오로지 이것이 진리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는 이마다 제각각 제가 옳다고 하니 어느 것이 참인지 혼란스럽고 모두 가짜라는 의심이 듭니다. 어떻게 가려 알 수 있겠습니까?” 붓다께서 답합니다. “거듭 들었다 해서, 전통이 그렇다고, 소문이 났다고, 경전에 그리 써 있다고 해서, 자명한 공리라고, 논리적으로 옳으니, 상황에 적절하니까, 존경하는 스승의 말이라고 곧이곧대로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태껏 자기들이 써왔던 정사(正邪)·선악(善惡) 판단의 잣대를 모두 부정당하고 어리둥절해진 그들에게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자신과 공동체의 안락과 평화를 해치는 일이라 생각되면 삼가고 거부하십시오!” 이어서 탐욕, 증오, 어리석음은 자신과 공동체를 망치는 만악의 뿌리임을 설명하신다. 누군가 참이라고 말할 때 그 주장의 배후 혹은 바탕에 사적인 탐욕과 증오, 사회와 역사에 대한 몰이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전혀 새롭지도 않은 남의 허물 찾기에 골몰하여 ‘거듭 되풀이되는’ 온갖 말 같지 않은 ‘카더라’에, ‘이 난세를 헤쳐 나갈 사람은 오직 나’라거나, 지켜질 수 없는 것임을 저도 알고 있을 속 빈 약속들이 넘쳐난다. 이럴 때 저 공식을 대입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아하, 이건 순전히 제 헛된 욕망의 원풀이로구나! 아하, 저건 온통 미움과 오기의 표출이구나! 오호라, 이건 인간과 공동체의 바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언동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