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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호대표의 자생경영 인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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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호5.jpg»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


불교 전통사찰들은 문화재를 지렛대로 예산의 상당부분을 정부 지원에 의존한다. 불교단체와 잡지, 출판사들은 대부분 대형사찰이나 능력있는 스님에게 의존해 버텨왔다. 이런 의존 피라미드 하에서 자생력은 더욱 고갈됐다. 그런데 남다른 자생력을 보여준 불교출판사가 있다.  <불광출판사>와 <월간 불광>을 운영하는 <불광미디어>다. ‘부처님 오신날’(5월 3일)을 앞두고, 지난 10년간 <불광미디어>를 반석에 올린 류지호 대표(56)를 27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옆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곳엔 장기근속자가 적지않다. 이 회사는 근무 20년이 되면 금 20돈으로 만든 불상을 안겨주고, 25년이 되면 파트너와 유럽 여행을 시켜준다. 얼마 전엔 고민이 많다는 직원이 가고싶던 런던에서 생활해보록 항공료와 3개월 체류비를 지원했다. 그 직원은 출판사를 나가 다른 길을 택했지만, 그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사람 중심’ 경영이 호황 업종이 아니라, 장기 불황 속의 출판계에서 추구되고 있다는게 놀랍다.


 <월간 불광>은 불교 잡지 가운데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43년 역사로 지난해 500호를 발간했다. <불광출판사>도 단행본 50권을 발간할 불교계 최대다. <불광미디어>는 불광운동을 주창하며 서울 잠실에 광덕 스님이 창건한 불광사가 모태다. 10년 전까지도 불광잡지·출판사는 불광사 불교용품점에서 나오는 수익금에 의존해 잠실 불광사 옆에서 유지해왔다. 


 류 대표는 자신이 이 회사를 맡으면서 불교용품점 운영권을 포기하고, 사무실도 조계사 옆으로 옮겨 자생을 모색했다. 사찰에만 경영을 의존하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본 때문이었다. 경전과 큰스님 일대기와 법어를 묶는 수준이던 불교출판계의 관행도 과감하게 탈피했다. 분야는 현대인들의 관심을 반영해 심리치료와 정신분석, 상담,명상, 서구불교까지 확대하고, 편집과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변화시켰다. <월간 불광>도 판형을 키우고 전면칼라화했다. <월간불광>은 100퍼센트 유료화해 매달 1만여부를 발행하고 있다. 모사찰에 의존하지않으면서 매출은 10억에서 30억원으로 늘고, 직원은 9명에서 2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잡지사와 출판사를 합쳐 <불광미디어> 주식회사를 출범시키며 디지탈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를 시도중이다. 불교 외 책들도 내는 <원더북스>도 만들었다. 같은분야 명강사 3명씩을 동시에 초청하는 ‘붓다 북 퀘스천’ 강연회도 정기적으로 연다. 홈페이지도 불교계 책·논문·강좌들까지 모두 소개하도록 개편 중이다.


 그는 가톨릭 모태신앙이었다. 고등학교도 가톨릭학교인 동성고를 나왔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미국에서 사는 그의 5형제도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표적 불교전도사가 됐을까. 류대표는 훤칠한 키지만 실은 왼쪽 무릎 아래 의족을 한 장애인이다. 시골에서 상경한지 1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해야했다. 그런데도 초·중학교때까지는 의족을 한채 만능 스포츠맨으로 활약할만큼 성격이 밝았다. 그런데 고교에 진학하자마 다리 절단부위에 종기가 생겨 체육·교련시간 내내 교실에만 혼자 앉아있으면서부터 장애를 자각하게 되고, 소설과 시를 읽으며 인생과 세상의 부조리에 관심을 갖기 사작했다. 고교 졸업후엔 2년 동안 진하게 방황했다. 청계천 헌책방들에서 <씨알의 소리>와 <사상계>, <뿌리깊은 나무> 같은 잡지들을 구해 읽고, 향린교회로 함석헌의 장자 노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책을 통해 불교과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그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입학해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불교’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대학생불교연합회 간사를 시작으로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 대승불교승가회 등 불교개혁 단체들에게 활동가로 지냈다. 1994년 종단개혁 때는 개혁의 기획자였던 현응 스님을 도와 몇개월간 성명서와 유인물을 밤새워 쓰는 실무를 맡기도 했다. 조계종 개혁 뒤엔 총무원 기획조정과장과 문화사업단 초대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이어 형제들이 있는 미국으로 날라가 1년을 보내던중 미국까지 날라와 불광출판사를 맡아달라던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지홍 스님이 틀어쥐지않고 개방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배려로 자율경영을 해올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류 대표는 회사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린 다음엔 1년 휴가를 자청해 아프리카와 중남미, 인도 등을 돌았다. 그는 “처음 1개월은 아내와 다음 4개월은 딸과 여행하면서 과거 너무 일에만 매달려 가족들의 감정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외동딸이 외국어고를 나와 서울대를 가서 잘 자란 줄만 알았는데, 딸은 아빠와 중학교 교사인 엄마는 너무 바빠 자기는 혼자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자기가 어릴적 아빠와 장기를 두면서 아빠가 한판도 져주지않아 화가 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강인하게 키우고 싶은 생각뿐이었지, 아빠가 져주길 바랐던 딸의감정을 헤아려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소통하지 못했던 아픔이 불교적 가치를 더욱 체화하는 과정이 되었단다. 


 그는  “이제 불광미디어가 불교 신도 몇명  늘리는 일이 아니라 경쟁과 욕망, 소통 부재 등 시대적 아픔을 해결할 불교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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