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이경호 주교. 사진 조현기자
서울시청 건너편 성공회대성당은 근대건축물의 백미다. 성공회는 이 대성당 앞마당에 있던 3층 건물을 허물어 300여평을 공원으로 만들어 서울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가 지금 이곳을 공원으로 꾸미는 공사 중이다. 성공회는 매주 수요일 12시20분엔 대성당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클래식 공연도 선보인다. 이렇게 열린 성공회에서도 이경호 베드로주교(58)는 더욱 더 열린 인물로 꼽힌다. 지난 25일 김근상 전임 주교에 이어 서울교구 교구장에 착좌한 그를 26일 만났다. 대한성공회는 서울·대전·부산 3개교구가 있는데, 전체 232명의 사제 가운데 157명이 서울교구에 속할만큼 비중이 크다. 이 주교는 정년은퇴하는 65세까지 앞으로 7년간 서울교구를 이끈다. 그는 대성당 뒷편에 자리한 주교관인 한옥집 양이재에서 객을 맞았다. 서울 복판에 고층건물을 올리지도 않고 소박하고 멋스런 한옥집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 성공회스런 집이다.
이 주교는 대성당의 주임사제로 있을 때 청년들과 누구보다 가까운 신부였다.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부활같은 주제조차 청년들이 얼마든지 묻도록 질문이나 신학 논쟁도 허용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했다. 숨통이 트인 청년들이 그를 잘 따랐고, 청년신자들도 늘었다.
성공회는 민주화 기여도와 성공회대 등으로 인해 진보적 이미지가 강하다. 독신사제를 고수하고 여성 사제를 거부하는 가톨릭과 달리 사제의 결혼을 허용하고, 여성사제가 10%나 된 것도 그런 이미지를 더욱 짙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의 전반적인 보수화는 성공회 신자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조화를 특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양성을 장려하기까지한다. 그러면서도 약자 배려나 예언자적 사명에 있어서만은 강단이 있다.
보수 기독교 인사들이 배타를 서슴지않는 동성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성공회에선 동성애자 주교까지 탄생했지만, 한국성공회는 그 문제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차별 받어서는 안된다”며 “성적인 경향 때문에 그래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경기도 안성 시골을 들개처럼 돌아다녔다는 그는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너무 멎져보여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제가 될 꿈을 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않았다. 사제의 꿈과 신혼생활을 동시에 추구하며 신학생 시절엔 밤엔 카세트테이프와 옷장사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사엔 영 소질이 없음을 자각하고, 외벌이로 처가살이를 하며, 아이를 전혀 학원에 보내지않은 소박한 삶을 택했다.
그는 딸을 키우면서도 쥐어짜지 않았듯이 신자들에게도 교리나 헌금을 강요하거나 쥐어짜지 않은걸 성공회스럽게 여긴다. 그는 “요즘 새로 오는 신자들은 여러 종교 교단의 문화 등을 상세히 비교해 기존신자들보다 더 잘알고 와 깜짝 놀라곤 한다”면서 “전례는 성스러우면서도 쥐어짜기않는 스타일이 이제는 호평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며 성공회스럽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