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어떤 경전의 가르침으로도 전할 수 없고, 어떤 수행으로 닦아도 얻을 수 없으며, 어떤 견문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어떤 방편으로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합니다.
오직 부처 종자를 숙세에 훈습한 큰마음이 중생만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하나를 듣고는 천 가지를 깨달아 대총지를 체득합니다. 이런 다음부터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머물기도 하고 세간에 뛰어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하고 자유자재함에는 그 도가 일상을 초탈하고 말과 행동에는 고정된 형식을 두지 않습니다. 달마스님은 문자를 세우지않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켰습니다.
세존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심은 실로 중생들이 자기에게 속아 생사의 괴로움 속에서 허망하게 자신을 속박하여 끝내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꼴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법(心法)을 보여,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도리어 그 마음법으로 스스로를 속인다면 어디에 간들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성철스님이 가려 뽑은 한글 선어록
<천목중봉 스님의 산방야화-선을 묻는 이에게>(감역·벽해원택, 장경각 펴냄)에서
천목중봉(1263~1323)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기에 활동한 고승. 절강성 항주 전당 출신으로 속성은 손씨이다. 15세에 5계를 받고 나서 <법화경>,<원각경>,<금강경>,<전등록> 등을 두루 열람했다. 24세에 천목산 사자원에서 고봉원묘(1238~1295) 스님을 참례하고 이듬해에 구족계를 받아 달마스님의 29세이자 임제슨미의 15세 법손이 되었다. 이로부터 천목산, 환산, 긍륭,변산,경산,육안산,중가산,단양,평강,오강,진강 등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스님의 도덕과 법력이 차츰 알려져 마침내 원나라 인종임금까지도 감화되어 `불자원조광혜선사'라 호를 내리고 금란가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많은 납자들을 제접하닥 영종 3년에 "나에게 한 구절이 있으니 대중에게 분부하노라. 무엇이 의지할 만한 근본이 없는 것인가"라는 임종게를 남기도 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