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락을 배달해야할 아침 9시가 다가오자 바쁘게 도시락을 담고 있는 애즈원사람들
» 일하는 옆에서 여유있게 휴식을 즐기는 애즈원 사람들
» 어머니도시락을 배달하는 승합차들
» 상하도 명령도 지시도 없는 회사 어머니도시락에 대해 설명하는 하야시 레이코
50명이 일하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회사에서는 50명이 똑같이 8시간 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누구든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한다. 일하는 시간이 많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 집에서 쉴 수가 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일하지 않아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이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도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사장은 있다. 그러나 그 사장은 직책의 하나일 뿐 다른 동료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과연 이런 ‘말도 안 되는’ 회사가 존립할 수 있을까. 특히 이렇게 명령과 지시가 없이도 조직이 굴러갈 수 있을까.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성과를 올리는 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예’라고 말하는 회사가 있다. 애즈원의 ‘어머니 도시락’이다. 이들이 별나라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자본주의 시스템대로 작동하는 일본의 중소도시에서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꾸지만, 현실은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느냐’가 일차적 관건이다. 야마기시공동체에서 2000년에 나온 애즈원 초기 멤버들도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쳤다. 밥줄을 해결할 거리를 찾지 못하다가 2005년 말 시작해 지금은 연간 우리 돈으로 10억원가량을 벌어들여 스즈카의 이상실험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게 ‘어머니 도시락’이다.
‘어머니 도시락’을 아침 7시쯤 찾아가봤다. 도시락 가게 앞엔 승합차 12대가 나란히 서 있다. 하루 평균 점심 도시락 900여 개, 저녁 도시락 200여 개를 공급하는 배달차다. 단 한 개라도 배달해준다.
가게엔 다양한 도시락들이 전시돼 있다. 안쪽은 도시락 공장이다. 새벽 4시 반부터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6시 반부터 도시락에 담기 시작한다. 배달이 시작되는 9시가 다가오면서 라인에선 예닐곱 명이 부지런히 도시락을 담고 있다. 그 한켠에선 서너 명이 의자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싸다 만 햄과 계란말이를 먹으며 허기도 때운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이들과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공간에 섞여 이채롭다.
일하고 싶은 만큼 하라는 회사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회사
상하위계, 규율, 명령도 없는 일터
사장도 책임과 권한 없는 직책일 뿐
사장은 직원들 고충 많이 경청하는 자리
실수해도 화내고 질책하기보다 위로
일터에서 자기실현하게 도와
일터를 놀이터로 만들어가는 노인들
애즈원에서 걱정 놓는 유학생들
» 식사하며 마음을 나누고있는 애즈원의 한일 유학생들
» 농장에서 포장중인 한국인 유학생 진준효씨
» 사토야마 숲에서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있는 다카사키 히로시
‘어머니 도시락’ 멤버는 모두 60명 정도다.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들 모두가 날마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주문량에 따라 20명이 일할 때도 있고 30명이 할 때도 있다. 이곳에서도 주문이 많으면 ‘알바’를 쓰기도 한다. ‘알바’들에게는 수당을 준다. 그러나 스즈카 멤버들의 대부분은 따로 급료를 받지 않는다. 장부상으로는 급료가 있지만, 급료는 스즈카의 ‘오피스’에 들어간다. 오피스에서 돈을 관리한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한 가족끼리는 한 주머니를 차는 게 가능한데 사람이 좀 더 많아진다고 그게 불가능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급료가 없을 뿐 아니라 상하 위계와 명령도 없는 회사에서 어떻게 주문량을 차질 없이 채울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
이곳 사장은 기시나미 류(40)다. 동글동글하게 ‘넉살 좋아 보이는’ 류는 이곳에서 ‘능력자’로 통한다. 그러나 진짜 능력은 그가 능력을 빙자해 권력을 쥐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에게 물었다.
-사장이란 책임과 권한을 지닌 자리 아닌가.
“그냥 역할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역할을 나누고 있을 뿐 상하가 아니다.”
-명령이나 정해진 규율도 없이 어떻게 매일 1천여 개의 도시락을 차질 없이 만들어 배달하나.
“규율이 없이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아무래도 각자는 부담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만약 어린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는 아침에 이곳에 올 형편이 안 되는데도 말도 못하고 억지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쉬고 싶을 때 쉬면 다른 사람이 화를 낼지 모른다거나 폐를 끼친다고 두려워해 얘기조차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다 들어주는 게 사장이란 자리다. 일단 꺼내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엔 무리라고 생각되던 것들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곤 한다.”
이들의 목표가 회사의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을 간과해버리면 이들의 방식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이들이 늘 잘해내는 것은 아니다.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최근엔 오후 4시30분쯤 100개의 도시락을 6시까지 배달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배달차가 현장에 5시30분에 도착했는데, 도시락을 차에서 내리다 넘어져 30개의 도시락이 땅바닥에 쏟아져버렸다. 도시락 가게는 뒤처리까지 끝나 모두 퇴근한 뒤였다. 남은 재료도 없었다. 일단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자 30분 정도는 더 기다려줄 수 있다는 답이 왔다. 에스엔에스를 통해 ‘멤버들’에게 비상상황이 전해졌다. 그러자 멤버들은 각자 집에서 저녁용으로 준비중이던 밥과 재료들을 가지고 가게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뚝딱 3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냈다.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20분 만에 배달을 완료해 약속을 지켰다.
‘어머니 도시락’에서 일하는 하야시 레이코(47)는 “실수하는 사람에게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고, 여러 명이 ‘괜찮니’라고 물어주었다”며 “비록 실수는 있었지만 함께 힘을 모아 이렇게 해내니 꽤나 재미가 있다고 더 좋아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눈치를 보는 것과 배려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키쿠보 유코(26)는 6개월 전 기시나미 류의 부인인 도모코로부터 “금요일 밤 ‘조이’를 지킬 사람을 찾아보는데, 모두가 어렵다는데 유코는 사정이 어때?”라는 말을 들었다. 애즈원의 본부 격인 ‘스즈카문화센터’ 안에 있는 ‘조이’는 애즈원 사람들이 무료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식료품, 가정용품 등이 있는 가게다. 그런데 ‘불금’엔 모두 가족과 보내고 싶어서 지원자가 없어 미혼녀인 그에게까지 청이 들어온 것이다. 아침엔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유코도 금요일엔 데이트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도모코의 물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유코는 “한번은 도시락 공장에서 류 사장에게 그런 애기를 했더니, ‘유코의 마음이 당시 어땠는지 더 얘기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해 솔직하게 다 털어놓다 보니 마음이 더 개운해지고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강요하지 않는 자세를 잘 보여준 이는 호스트를 맡은 이치가와 노리카즈(58)였다. 그는 이곳 핵심 멤버로 활동한 지 10년이 됐지만 그의 부인은 인근에 살면서도 한 번도 애즈원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
세상적인 성공, 즉 출세를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애즈원도 자기실현의 장이다. 교외에 대형마트가 버려둔 땅을 빌려 애즈원이 20여 종류의 농작물을 가꾸는 농장 초입엔 특이한 과일인 ‘용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이 용과는 쓰지야 데쓰오(73)가 꼭 이 과일을 길러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다.
스즈카 시내에서 차로 20분 가는 야산인 ‘사토야마’엔 애즈원다운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고 그 곁에 장작더미와 오두막이 있다. 나무를 좋아하는 다카사키 히로시(68)와 스즈키 에이지(68) 등이 야산을 빌려서 숯가마를 만들었다. 히로시는 “우리들의 놀이터”라고 했다. 숯가마 옆엔 큰 나무에 그네와 ‘해먹’을 매달아놓아 그네와 해먹을 타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숲체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겸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을 하고 숯가마도 구경하고 나면 오두막에 설치한 ‘주문을 받지 않는 식당’에서 주문하지 않아도 라면 등을 끓여주니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지 않을 수 없다. 숲길을 200미터쯤 걷다 보면 우리나라 산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다랑논들이 있고, 그 위로 장난꾸러기 노인들이 만든 나무다리가 이어진다. 나무다리 중간엔 멋들어진 정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서 하는 건 이렇게 뭔가를 설치하는 하드웨어만이 아니다. 60살이 넘은 세 남자가 함께 일하다 보니 의견이 달라 삐꺽거릴 때도 있다. 그러면 이들은 ‘사이엔즈’(과학적 탐구)식의 대화를 하며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의견이 다르다고 왜 서로 멀어져야 하지’, ‘다퉈도 속마음은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 아닐까’. 그 덕에 세 노인이 이제 좀 더 사이좋게, 재밌게 이 숲속에 동화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
애즈원엔 한국에서 온 유학생도 3명이 있었다. 학교로 가는 유학생들과 달리 애즈원 유학생들은 사이엔즈연구소의 자아탐구 프로그램들에도 참여하지만, 일과 일상을 함께 하는 데서 더 많이 배우고 깨닫는다.
이곳 유학생 중 최고참인 박진순(38)씨는 26살에 늦깎이로 교육대학에 들어가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그 좋다’는 교사를 때려치우고, 새 삶을 찾아나서자 가족들의 반대가 컸다. 그는 “늘 상대가 (내 삶의) 방해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의 족쇄를 차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서울 성미산학교에서 11년간 교사를 한 백흥미(35)씨는 “그동안 알아왔던 종교적 진리가 실제로 이해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온 진준효(36)씨는 밥상을 차려놔도 누군가가 먹으라고 얘기하기 전에 숟가락도 들지 못할 만큼 내성적이었다. 그는 “위계나 명령이 없는 일터에서 지내면서 서로 상의하며, 일 자체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 마음을 다 열지 못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애즈원엔 일본의 다른 지방에서 온 유학생 3명도 있다. 이 가운데 나고야시 수도국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온 다카하지 고지(30)는 “자기 소유에만 집착해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뭔가 다른 세계를 찾아보고 싶어 3년간 애즈원을 오가다가 이곳에서 뭔가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자 부모님의 반대가 컸고 실은 나도 걱정이 컸는데, 저축이 있는 나와 달리 저축도 한 푼 없으면서 걱정 없이 잘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걱정스런 삶’이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즈카(일본)/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