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를 팔고 사는 모습. 사진 픽사베이 제공
울퉁불퉁하거나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며 벌레 먹은 자국도 있는 그런 사과는 요즈음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1981년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한국서 먹던 새콤달콤한 홍옥이나 국광 같은 사과가 참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한국에는 ‘후지’라는 놈이 사과의 세계를 완전히 점령해버려 사과의 맛도 일색이 돼버렸네요. 기후 때문에 토종 과일의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못한 독일에서 사과는 아주 중요한 과일입니다. 매일 사과를 하나 먹으면 심장이 튼튼해진다는 말도 있지요. 신종 사과의 개발과 저장 방법은 그래서 독일 농부들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유기농 직거래장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독일산 사과들이 저마다 예쁜 이름을 달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가득히 쌓여 있습니다. 우리 식구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의 이름은 엘스타입니다. 홍옥처럼 색깔이 예쁘진 않지만, 새콤달콤한 맛이 홍옥을 가장 닮았어요. 갓난아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딸아이와 매주 두 번 열리는 시장에 가는 일은 거를 수 없는 소중하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농산물뿐만 아니라, 가게를 임대해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없는 수공예가들은 1미터 남짓한 자리에서 스스로 만든 소품들을 가지고 나와 팔면서 발판을 다지는 장으로 삼기도 합니다.
거긴 사람도 물건도 생기에 넘치고, 흥정이란 게 없는 독일인데 에누리와 덤이 가능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물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자리인 거죠. 한국에 오는 서양인 관광객들에게 시장이 꼭 가야 할 장소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얼굴 같은 생기 있는 분위기와 규격화되지 않은 다양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치 찍어낸 듯 생채기 없이 반짝거리며 질서정연하게 플라스틱 포장 안에 담겨 있는 과일과 채소들은, ‘다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획일화와 규격을 벗어나면 ‘틀렸다’고 불안해하는 마음과 참 닮은 것 같습니다. 개성의 주장은 빈껍데기 선전문구일 뿐, 유행은 쓰나미처럼 덮쳐서, 다양한 스타일의 ‘교복’ 내지 ‘제복’을 입혀놓고는 지나가 버리고, 곧 다음 쓰나미가 덮칩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의 ‘꼴’은 잊고 스스로를 왕따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세월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몸과 마음의 주름은 억지로 펴버리고, 머리칼은 모두 까맣게 물들여버려서 얼굴과 나이의 균형이 깨져버린 모습들이 ‘보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연’이라는 말 속에 이미 담겨 있듯이, 자연에는 일부러 만들어진 규격 없이 서로서로 있는 그대로 섞이고 흩어지면서 생겨나고 스러집니다. 하나하나가 그 나름대로 완벽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선물은 규격화된 잣대가 아니라 바로 스스로의 ‘꼴’을 읽을 줄 아는 독해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