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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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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할머니 호위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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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아빠, 전에 말한 거 아직 유효해요?” 기다리던 말씀이다. 할머니 집 위층으로 이사하면서, 부탁드렸었다. 나중에 할머니 집을 마을학교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에 두셨다가 물으신 거다. 할머니는 오래 살아 정든 집을 떠나면서 시세보다 많이 낮은 가격에 주셨다. 애정이 담긴 집이 좋은 일에 쓰이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마을에 특별한 애착이 있으셨다. 통반장 오래 하며 마을 수도, 전기 다 놓으셨다고 한다. 터줏대감 텃세가 꽤 있어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잘해주셨다. 산 아래 한적한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위해 이것저것 하는 걸 좋게 보셨다. 교통 불편하고, 초등학교도 멀고, 어린이집 하나 없는 곳이다. 신혼부부는 잠시 살다 아이 학교 보낼 때 되면 떠나는 마을이었다. 처음 그곳을 돌아보던 날, 부동산에서 큰길 주변 집 몇 개 보여주고는 돌아서는 우리 부부에게 큰 기대 없이 던지듯이 말씀하셨다. “저 오르막 위에 낡은 집 하나 있는데, 온 김에 보고나 갈래요?” 그 할머니 집이었다. 한눈에 여기에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밝은누리 인수마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을 어린이집 초기에 아이들 운동 수업을 맡았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운동하고 놀았다. 손녀 데리고 나오시는 한 할머니와 자주 마주쳤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셨다. 아빠들이 아이들 산책 데리고 나와 노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단다. 몇 가정 어울려 공동육아 한다는 얘기도 흥미롭게 들으셨다. 얼마 뒤 손녀는 어린이집에 함께했다. 몇 년 지나 식당을 그만두신 할머니는 어린이집 밥상 선생님으로 오셔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하신다. 


 호랑이 눈빛 미륵보살 청룡빌딩 할머니. 주변 사람들과 골목 떠나갈 듯 싸우시는 걸 여러 번 보아왔다. 부동산에서도 그 건물 거래는 꺼렸다. 10년 넘게 그 건물에 세 들었던 우리에게, “할머니랑 안 싸워요?” 하고 물을 정도였다. 우리에게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잘 지냈다. 오히려 든든한 호위무사 역할을 해주셨다. 마을서원에서 새어나가는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웃분이 지나치게 항의한 적이 있다. 사과도 통하지 않던 그때, 할머니가 나타나셔서 우렁차게 “아이들이 다 그렇게 노는 거지” 하며 물리치신 일은 아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쾌거(?)였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계셨다. 마을학교 아이들 산책 시간에 만나면, 무척 귀여워하신다. 아이들은 예뻐해주는 사람을 잘 알아본다. 하루 산책 선생님으로 와 주시길 부탁드린 적이 있다.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달리 머리도 하시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오셨다. 자식들에게 괜한 일 한다고 타박도 받고 도움 되는 얘기도 들으셨단다. 손가방은 사탕이 한가득이었다. 몹시 긴장하셨지만, 행복해 보이셨다. 나중에까지 그날 참 고마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밝은누리는 할머니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할머니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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