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마을 공동체 풀뿌리는 살아있다
생태마을 관련자 180명 모여
보은 한 마을에 독특한 잔치가 열렸다
올 1월 이어 두번째 한마당 펼쳐
동지들과 공감하며 감격
유통·생산·치유·종교 등 9개 분야
다양한 공동체운동 뿌리내림 확인
정부·지자체 주도 획일적 사업 비판
민간이 나선 자발적 운동 강조
도시와 농촌 손잡고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생태적 삶 소개도
자립 돕는 다양한 기술 발명
장작스토브 등 적정기술 선보여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 성찰이 우선
“고령화 시대에 최고의 노후 대비”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선애빌마을에서 지난 16~17일 독특한 잔치가 펼쳐졌다. ‘2017년 한국생태마을공동체 네트워크회의 & 잔치’였다. 전국에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거나 기존 마을을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 공동체적 삶을 희망하는 이들이 모이는 한마당이었다.
생태공동체 운동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갈 곳을 찾던 진보운동가들이 환경·생태, 대안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던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 반생명적 정책과 거센 신자유주의 물결과 농촌 붕괴 속에서 생태공동체와 풀뿌리운동도 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뿌리가 거의 뽑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번 모임은 밟혀도 풀뿌리는 건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애초 60여명이 올 것으로 예상된 산골 모임에 180명이 몰렸다. 지난 1월 처음으로 경남 함양 두레마을에서 열린 생태마을 워크숍 때보다 3배나 많은 숫자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전국 곳곳에서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들이 뿌리를 내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은 이곳에 모인 이들을 통해 곳곳에 튼실한 공동체 마을들이 생겨났고, 자기들만 외롭게 대안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했다.
■ 생태공동체 현황
첫날 ‘생태마을의 동향’에 대해 발표한 영광생명평화마을 황대권 대표는 공동체의 유형을 유통(네트워크)·생산·치유·교육(연구)·종교(영성)·사회복지·생태마을·지역·문화예술 등 9개 분야로 소개했다. 이미 우리나라에 이런 다양한 공동체운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분과별 또는 삼삼오오 대화모임에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으로 인해 ‘함께 어우러져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행복한 삶을 가꾸기 위한’ 공동체성은 뒷전인 채, ‘눈먼 예산 따먹기 식’의 마을 만들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부분의 예산이 사업가와 교수들이 건물 짓는 데 들어가고 사업이 끝나면 건물만 남고 사람은 떠나는 병폐가 되풀이된다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 황 대표는 “정부 주도의 획일적 마을 만들기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다양한 생태공동체가 얼마나 뿌리내리느냐가 성패를 가름한다”며 생태공동체의 판별 기준으로 얼마나 △영성적(내적 평화)인가 △생태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인가 △공동체적(공동체적 인간관계)인가를 제시했다.
이번 모임엔 자발적으로 뿌리내린 생태마을 공동체들이 자기 마을을 소개해 희망을 엿보게 했다. 이번 모임이 열린 선애빌을 만든 명상단체 수선재는 보은과 전남 고흥 등에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또 1991년 서울 인수동에서 시작해 강원도 홍천에 이어 경기도 군포에도 새 공동체를 이끈 ‘밝은누리’의 최철호 대표는 “생태적 삶은 도시와 농촌이 협심해 서로를 살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홍천공동체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실사구시
‘이상’만 드높고 구체적으로 자급자족할 힘이 없던 과거와 달리 공동체들이 자립을 돕는 다양한 기술을 발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슬로패션협동조합 정은 이사장은 친환경적인 옷과 소품들을 전시하며 슬로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적정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은 적은 양의 장작으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작스토브와 사람의 동력으로 전기를 발생시켜 움직이는 세탁기와 믹서기 등을 시연했다. 수선재 수련자들의 꾸린 ‘스페이스선’은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양변기에 끼우는 5만원가량의 생태변기와 함께 200리터의 물을 작은 공간에 배치할 수 있는 직사각형 물탱크를 선보였다. 경남 산청 민들레학교에서 대안기술센터를 운영하는 김인수 교장은 “우리가 개발한 대안기술을 통해 우리나라 대안공동체들뿐 아니라 아시아 후진국 농촌공동체들의 자생력 돕기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완주 전환기술협동조합 박용범 상임이사를 비롯한 목수들은 선애빌의 잔디뜰에서 우드페스티벌을 펼쳐 1박2일 동안 멋진 목재 취사장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공동체의 실질적인 성패의 관건이 자립과 화합인 만큼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들도 소개됐다. 서울 회기동에서 시작해 오는 7월 서울 도봉산 아래 50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 건물을 지어 입주하는 은혜공동체 김민수 목사는 “10년간 큰 갈등 없이 공동체가 유지해온 데는 응어리가 쌓이지 않게 즉각즉각 하는 마음나누기가 주효했다”고 밝혔다.
■ 교류
풍류도마을 신현욱 대표가 이끈 밤잔치는 서구의 공동체운동과 전혀 다른 한국인다운 어울림이었다. 잔치는 강강술래와 캠프파이어에 이은 댄스파티로 이어져 새벽 3시까지 브라질 삼바축제 못지않은 신명을 발산했다. 이들은 놀이 중에도 공동체적 삶을 위한 정보를 나눴다.
이번 모임을 만들어낸 임진철 실행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서 전국의 마을공동체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 플랫폼이 구축되어 마을에 필요한 자원과 기능·노하우와 정보 지식들을 나누고 협업과 품앗이를 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 숙제
모임에선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 중심의 공동체가 많다는 특성이 엿보였다. 여러 종교공동체를 거치고 지리산에 인문학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밝은마을 석승억씨는 “한 종교인의 목표에 여러 사람이 자원으로 동원되는 경우도 많다”며 “나를 어떻게 보고,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의 바탕이 바로 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연구원 김성균 연구소장은 “공동체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분명한 흐름이 있다”며 “확장성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 본질에 대한 성찰이 먼저라는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잔치는 생태마을을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의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모임에서 출범한 ‘한국생태마을공동체네트워크회의’의 선언문을 기초한 유정길 전국귀농운동본부 정책연구소장은 “물질주의와 자본 중심의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자립적 순환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그 기본단위가 마을이므로 생태마을 공동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또 생명누리공동체 대표 정호진 목사는 “생태마을 공동체는 고령화 시대에 최고의 노후 대비가 될 것이고, 전국 혹은 세계 어디를 가거나 반갑게 가족으로 받아줄 수 있어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보은/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