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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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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복수를 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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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지께서 딱 한 번 회초리를 드신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집집마다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중전화라는 것도 없던 시절, 저는 방과후에 여러번 바로 집으로 가질 않고 친구집에 놀러갔지요. 엄마는 당연히 걱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전학한 후 집이 학교에서 아주 멀었던 제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거죠.


 어느 날, 자기 집에는 화장실에까지 전화가 있다고 자랑하는 반친구의 집이 너무 궁금해서 또 야단맞을 것을 각오하고 따라갔습니다. 그 때 걸터앉는 수세식 변기를 처음봤고, 사업한다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는 전화기도 정말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야단맞을 생각에 가슴을 약간 졸이며 집에 돌아왔는데, 아뿔사, 엄마는 안계시고, 늘 늦은 시간에 귀가하시는 아빠가 떡하니 마루에 앉아계시는게 아닙니까. 아빠는 화도 안난 얼굴이어서 더 당황이 되는데, 들어가서 바지로 갈아입고 나와라, 하시는거죠. 바지를 입고 나와 종아리를 맞을 자세로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예, 라고 대답하자 대나무 회초리가 세번 종아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한테 가봐라, 하시는 거에요.


 치마를 입고서는 딸애의 종아리가 너무 아플까봐, 맞은 자국이 생길까봐, 그리고 야단맞고서 서러워 울 그마음까지 헤아리신 아버지는 아무런 군더더기없이 ‘복종’이 아니라 ‘책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군의 장교셨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아버지의 섬세한 배려는 놀랍기만 합니다. 어디서 무얼하다 오는거냐고 캐묻지도 않으셨어요. 


 할머니 곁으로 간 저는 울기보다는 오히려 좀 어리둥절하면서도 무언가 든든한 느낌을 가졌던 듯 합니다. 할머니도 그저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제게는 그것이 한국의 정서고 문화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사십여년이 지나, 독일의 학부형들과 가정에서의  폭력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저는 그날의 얘기를 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버지의 매는 체벌이 아니라 하나의 예식이었거든요.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미햐엘  하네케는 ‘하얀 끈’이라는 영화에서 나치독일같은 전체주의적 독재가 가능한 사회심리적 근거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조선시대보다 더한 가부장적 절대복종은  여인들을 좌절시키고, 도망갈 구멍없이 옥죄는 어른들의 위선적 권위는 아이들의 비밀스런 저항과 급기야 복수를 야기합니다. 이 영화에서 처럼 아직도 독일에서는 야단맞을 때 꼿꼿이 고개를 들고 상대를 쳐다봐야 하는데, 상대방에게 마음의 어떤 이탈도 용납하지 않는 이 ‘철저함’은 참 섬칫한 문화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선생님에게 꾸중들을 때, 고개는 숙였지만 마음은 숙이지 않은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선생님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겐  숙인 고개 밑으로 딴 생각할 수 있는 여지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 드러내지않은 저항들이 모여 잔인한 복수가 아니라 촛불이 되었다면 억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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