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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은 미신? 상생의 문명 여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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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김항의 <정역>(正易)이 동아시아의 역학문명에서 문명진화적 상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일범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수는 <정역> 연구의 대가인 학산 이정호(1913~2004)전집 13권 출간을 기념한 학술세미나에서 “학산 선생은 19세기 후반 일부(一夫)에 의해 등장한 정역을, 오늘날 유발 하라리가 말하고 인류가 주목하고 있는, 문명진화론의 관점에서 이미 해석했다”고 밝혔다.
 “복희역은 팔괘역이고 문왕역은 육십사괘역이다. 발전 진화한 문명의 콘텐츠를 팔괘, 육십사괘가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학산 선생이 말한 우주변화와 인간의 개혁은 정역이 21세기 인류가 직면할 기술혁신과 생태문제로서 이것이 제3의 역인 정역으로 상징되는 시대적 과제이다. 학산 선생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오, 형제들이여, 어서 바삐 잠을 깨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최 교수는 학산이 <정역>을 상극의 죽고 죽이는 문명을 뒤로하고 상생의 문명을 연 키로 보았다는 것이다.
 “인문이 서로 교류하여 동서가 근린이요 사해가 일가 될 날이 멀지 않다. 분욕(忿欲)과 독선에 사로잡힌 족속은 아직도 어리석고 죄악적인 증오와 투쟁을 일삼고 있지만, 사랑이 미움보다 훨씬 생명적이며, 저가 평안해야 나도 편안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  한 줄기 회오의 눈물과 더불어 인류애의 즐거움을 깨달아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찬가를 높이 부르고, 인종 피부 언어 풍속 습관 종교 등을 초월하여 부디 내 집에 와 밥 먹기를 충심으로 바랄 것이다. 이것은 공연한 백일몽도 아니요 부질없는 이상론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만 우리 인류는 나머지 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생생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학산 선생이 정역에서 발견한 새로운 문명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인류가 선택할 것는 서로 사랑하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하지 못하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정역의 경고라고 한다. ”
 최 교수는 융 분석심리학파의 신화학자 노이만의 신화학(神話學)과 근대문명론을 학산선생의 정역의 샘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마중물로 소개했다. 융 학파의 신화학자 에리히 노이만(E. Neumann)은 인류 문명 초기의 다양한 신화들을 무의식으로부터의 의식의 발생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유형화하여 시계열(時系列)적으로 분류하였다. 이 시계열은 유아기로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에 이르는 인류의 마음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신화 유형은 우로보로스(Urobros) 또는 ‘커다란 고리(Great Round)‘ 이다. 우로보로스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靈知主義)에서 사용된 것으로 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의 고리(環)를 말하는데, 이 상징은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우로보로스의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정역에서 계열화한 복희팔괘도, 문왕팔괘도, 정역팔괘도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로보로스의 닫혀진 원은 그곳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미분화된 시원의 혼돈을 나타낸다.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우로보로스는 의식이 아직 무의식으로부터 분화하지 않은 발생 상태를 상징한다. 다음 단계는 세계의 부모가 분리됨으로써 뒤이어 ‘위대한 어머니(太母)’가 출현하는 것이다. 세계의 부모란 세계 각지의 우주 창조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세계 시작의 신들로서 오랫동안 굳게 껴안아 결합된 상태로 존재하는 남녀 조상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 공간은 이 양친이 분리됨으로써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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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역에서 우로보로스의 닫힌 원, 즉 만물이 생겨나는 미분화된 시원의 혼돈은 하도(河圖)의 중앙에 위치한 십(十), 무극(无極)으로 표현된다. 정역의 무극(无極)은 융 심리학파에서 의식의 원형, 최초의 무의식으로서, 이것은 혼돈과 같은 것, 알 수 없는 것이면서 모든 생성의 씨앗을 담고 있는 어떤 것이다. 여기서 ‘나’(자아)라는 의식이 태어나고, 나를 중심으로 의식이 강화되고 분화된다. 의식은 본래 발전의 궤도를 따라 일방적인 발전을 한다. 대상을 구분하고 분석하는 가운데 의식은 본래 인격의 통합체, 전체인격에서 멀어진다. 그것이 의식의 속성이다. 그래서 전체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자기원형은 의식의 일방성을 지양하고자 그 대극에 해당하는 상징을 활발히 보내서 의식이 소홀히 하고 있는 대극을 인식하도록 자극을 준다. 이것을 의식의 일방성에 대한 무의식의 보상기능이라고 한다. 보상기능의 목적은 전체가 되는 것. 도가의 말대로라면 도와 일치된 삶을 실현하는데 있다.
  ‘자기’로부터 멀리 가 있는 자아의식(자기소외 Self-alienation)을 ‘자기’로 되돌아오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이런 보상작용은 극단적인 정신적 에난치오드로미아(psychic enantiodromia) 현상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정신적 대극의 반전으로 의식의 외골수로 나가는 경향이 극에 달하면 무의식의 보상기능도 극도에 다다라 이와 반대되는 경향이 강해져서 극적으로 의식의 태도를 반전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결국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자기실현’에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융 심리학에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최후의 자기실현의 과정은 노이만에게서 우로보로스의 신화 상징으로 해석된다. 무극, 무의식에서 위대한 어머니가 출현한 다음 단계에 나타나는 신화는 영웅전설이다. 영웅은 괴물 퇴치(용, 우로보로스, 무의식과의 전투)에 성공하여 비보(秘寶)를 손에 넣은 남성신이다.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괴물은 자아의 독립을 위협하는 무의식의 힘을 상징한다. 영웅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손에 넣은 비보는 자아의식이 무의식의 힘으로부터 독립했음을 보여준다.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신화는 어머니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달성한 청년기를 상징한다. 노이만이 제시하는 신화 발전의 최종단계는 정신적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 혼이 변용하여 새로이 태어나는 ‘재생’ 또는 ‘신생’의 단계이다. 성장한 의식은 이렇게 해서 영원한 생명의 차원과 연결된다.
 정역에 등장하는 하도, 낙서 그리고 복희팔괘도, 문왕팔괘도, 정역팔괘도는 놀랍게도 노이만이 제시한 신화의 진화 발전 과정과,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원형인 무의식과 무의식에서 자아의식의 배태, 그리고 최후에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가 되어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과정과 일치하고 있다. 
 정역에 나타난 복희괘도(伏羲卦圖)는 하늘의 원리를, 문왕괘도(文王卦圖)는 인간의 생장 과정을, 정역괘도(正易卦圖)는 하늘 원리의 궁극적 실현을 나타낸다. 노이만식으로 말한다면 이는 인류 초기 원시 신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이며, 또한 융 심리학에 있어서 인간의 의식진화의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융의 일화를 통해서 역학의 지식적 특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융(C. G. Jung, 1875-1961)은 그의 생애 말기에 동아시아 문명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역경을 가장 중시했다. 처음에 융이 주역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점서(占筮) 때문이었다. 융은 점의 본질이 무의식에 내재하는 직관지(直觀知)와 관계한다고 생각한다. 1930년 주역을 비롯해서 논어, 노자 등 유교와 도교의 고전들을 번역하고 융에게 가르쳐준 독일의 중국학자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lhelm, 1873-1930)이 사망했을 때 뮌헨에서 열린 추도집회에서 융은 빌헬름이 주역을 번역한 일을 칭송하고, 주역의 기본적 사유방식이 ‘공시성(共時性)’이라고 정의하였다. 당시 영국 인류학회의 회장이 융에게 “중국인은 왜 과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융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보는 것은 당신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는 과학이 있고 그것은 바로 주역이다. 단 그 과학의 원리는 서양의 과학과는 다른 것이다.”
 융이 주역에 집중한 이유 중에 하나는 64괘로 분류된 상징적 이미지 때문이다. 이미지 즉 상(象)은, 언어가 일의적(一義的)인 것과 달리,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관찰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현상을 관찰하는 주체가 동시에 그 현상의 공시적 체험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인과율의 경우에 주체는 현상 밖에 있으면서 관찰할 뿐이지만, 공시성의 입장에서 주체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공시적 감응으로서 무의식에 잠재하는 일종의 직관지의 능력을 통해서 인지된다. 
 최 교수는 “과연 역학(易學)의 체계에서 근대문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그는 “만약 지금 대다수가 신념처럼 묵수하는 ‘유교 = 전근대성’이라는 도식을 전격 해체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역을 전근대적 미신의 일종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오늘날 과학문명과 물질세계는 일견 화려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듯하나 인류애와 정신세계는 매우 궁핍한 상태에 놓여있어 <정역>과 학산의 사상을 다시 되돌아봐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학산 선생이 ‘창조의 대원리적 총체요 대의지적 존재’라고 해석한 천(天)은 인류가 자각한 종교성이며, ‘만물을 생육하는 터전이요 관경’이라고 한 지(地)는 세속성이다. 그리고 천의 정신성과 지의 육신성이 결합한 인간은 종교성과 세속성을 문명의 진화과정에서 구현할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종교성과 세속성의 균형을 진화과정에서 구현할 사명을 타고난 존재인 것이다.
 정역에서는 그 균형성을 “조양율음(調陽律陰)”이라고 한다. 양(陽)은 역학에서 정신성을 나타내고 음은 물질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조양율음은 정신성과 물질성, 즉 종교성과 세속성의 균형을 의미한다. 정역에서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와 낙서(洛書)는 종교성과 세속성의 불균형을 상징하며, 소위 서구 근대문명의 경화된 세속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학산 선생의 정역 해석에서 중핵을 이루는 것은 황극론(皇極論)으로서 곧 인간의 진화, 자기완성”이라고 주장했다.
 “진화생물학에 의하면 인간의 진화는 일종의 돌연변이 현상이다. 생물학자들의 용어로는 이 특별한 ‘개체군’의 유전적 ‘선택상수’가 높아서 그 돌연변이가 결국 지배적인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유전적 선택상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종의 몸의 반응이 같아야 하며, 그것은 몸의 진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몸의 어떤 부분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변화된 몸을 가진 개체가 진화적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산 선생이 인간완성의 길로서 제시한 과제인 중위정역(中位正易)과 그 구체적 실천을 상징하는 산택통기, 수화상체 뇌품출입(山澤通氣 水火相逮 雷風出入)은 의미하는 바가 깊다고 할 것이다. 인간의 자기 노력과 실천에 의해서 진화의 가능성을 높여 간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학산 선생이 해석하는 정역의 핵심은 사실상 인간의 완성에 집중되어 있다”며 “이 점이 오늘날 인류의 미래 문명을 예측하는 일반적 관점과는 다른 정역의 특성”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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