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딱 한 번만 불러보면 안 돼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얼굴은 아마 어머니, 엄마일 것이다. 오십을 훌쩍 넘긴 어느 시인도 하늘나라 가면 엄마를 제일 먼저 만나서 세상의 일들을 다 일러바칠 것이라고 했다. 칠순이 다 되신 어느 성직자도 구십을 넘기신 나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이제 세상에 나 혼자고 마치 고아가 된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문을 열고 가장 먼저 ‘엄마’를 불렀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도 ‘엄마’를 찾았고 깜짝 놀랄 때에도 ‘엄마’를 불렀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부르는 단어가 ‘엄마’일 것이고 일생 동안 수천 번 이상은 이 ‘엄마’를 외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그 흔하게 부르는 ‘엄마’를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들도 있다. 옹알이처럼 ‘엄마’라는 단어를 겨우 내뱉을 나이에 누나와 함께 고아원에 버려졌던 한 꼬마,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누나와 함께 의지하며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 버린 청년, 호스피스에서 간암 말기의 그 청년을 만났다. 단 둘밖에 없는 남매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장이라고, 누나 먼저 시집보내야 한다고 열심히 울산의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누나도 시집가고 조카도 생기고 본인도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하던 그 청년은 이제 세상과의 이별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세상에 대해 화가 나고 살아온 인생이 억울하고 모든 상황에 분노하지 않겠는가! 의료진도 봉사자도 그 분노가 가득 차서 이글이글 불을 내뿜을 것 같은 그 눈빛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벌건 눈빛, 황달 든 얼굴, 복수 찬 배, 수시로 내뱉는 절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잠도 안 자는 그를 어떻게 도울까 고민할 때 오랜 경험의 어머니 봉사자가 그 방에 들어가서 그 청년의 이름표를 보면서 ‘어머, 우리 아들과 동갑이네’라고 한마디했다. 그 순간 그 청년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럼 우리 어머니도 살아계시면 이 아줌마 같은….’ 그때부터 그 청년은 이 어머니 봉사자에게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밥 먹여주세요, 머리 감겨주세요, 손톱 깎아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청년이 퉁명스럽게 어머니 봉사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줌마, 나 소원 하나 들어줄래요?’ 어머니 봉사자는 ‘그래, 말해 봐, 맛있는 것 해다 줄까? 산책 나갈래?’ 청년은 ‘아니요, 나 그냥 아줌마한테 엄마라고 딱 한 번만 불러보면 안 돼요?’ 봉사자는 ‘그래, 불러, 내가 엄마 해줄게’ 청년은 큰 소리로 ‘엄마, 엄마’를 외치다가 다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 엄마’를 수십 번, 거의 30여 분을 외쳤다. 오직 ‘엄마’라는 단어만을…. 그리고 그날 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만나러 한 달을 함께했던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