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기도가 잘 안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마태 17,14~20)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발하시고 구마와 치유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파견나가 악령을 추방하고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문제가 생겼고 드디어는 몽유병 아이를 치유해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발단입니다.
“스승님, 왜 저희가 마귀를 쫒아내지 못했을까요?”
“믿음이 약한 탓이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도 옮길 것이다.”
제자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자괴감도 컸을 것입니다.
누구나 무엇을 청할 양으로 열심히 기도하는데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예수님 말씀을 따르자면 믿음이 약한 탓이라 하고요. 손톱만큼 한 진실한 믿음이 없어서라는 것이니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정말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요즘 산위의 마을은 가족들이 줄어들고 농업은 힘들고 해서 아주 많이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마을을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간청드리며 왜 힘들게 하시느냐고 기도드렸더니,
“내가 너의 기도를 안 들어 준 게 뭐냐? 땅 사고 집 지으라고 필요한 돈 줬지, 매번 마음 좋은 가족들 보내줬지, 자연재배 농사 아주 잘되게 해주지. 아이들 정말 잘 크게 해줬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들어 줬다.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면 돼....”
기도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주신 은혜를 잘 활용하고 감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능력 부족만 도드라 집니다.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도 루가복음 18장 ‘과부와 재판관’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하신 격려 말씀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1,000일 기도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을 시작할 때 천일기도를 두 번 바쳤습니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기도를 바칠 때는 찔찔 짤짤하게 하지 말고 최소한 한 달, 백 일, 천일! 이렇게 장기전으로 바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청원기도를 줄기차게 오래 바치면 나의 기도가 질적으로 정화됩니다.
사실 원하는 기도에는 자기 행복이 중심에 있는 이기주의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싫어하십니다. 싫어하시는 기도를 계속 바치면 하느님도 짜증나십니다.
내 기도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청하는지, 사실 나도 알지 못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머지않아 나는 죽게 되는 건 아닌지.....
기도를 오래 하다보면 내 기도의 여러 차원을 보게 되고 정화됩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달렸고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기도입니다.
같은 내용의 다른 복음에서는 “믿음이 약한 탓이다!” 대신에 “기도하지 않고는 안되는 일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기도고 기도는 믿음에 기초합니다. 그 믿음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몸을 움직이게 할 때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은사가 베풀어집니다. 겨자씨 같은 살아있는 나의 믿음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손이 산을 옮겨놓습니다. (2017.8.12.) *
도둑고양이들이 어스렁거려도 내버려 뒀더니 방에까지 들어 온다.
어흥! 나한텐 어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