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부에 의해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임명된 전남 장성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맡은 지선 스님
지난 3일 전남 장성 백암산 백양사를 찾았다. 작열하는 태양 빛이 천년 고찰마저 녹일 듯한 날씨였다. ‘더위를 어떻게 피할까.’ 백양사에서 선풍을 드날린 전 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1912~2003)은 “추위와 더위를 어떻게 피하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에 가면 된다”고 했다. 제자가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추울 때는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서옹 스님의 제자인 방장 지선 스님(71)이 객을 맞는다. 그 역시 이런 날씨에 에어컨도 켜지 않고 더위 속에 들어앉았다. 지선 스님은 방장직 말고 세속 소임을 더 맡았다. 6·10항쟁 30돌을 맞은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임명한 것이다. 그는 30년 전 6·10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내란음모죄로 옥고를 치렀고, 1989년 조선대 학생 이철규씨 변사 사건 때 의문사 진상규명운동을 하다가 다시 광주교도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세상이야 춥든 덥든 모르쇠로 일관하고 은둔해 수행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던 절 집안에서 그는 1980년대 소장파 승려들과 실천불교승가회를 조직해 독재에 맞서 싸웠다. 그 때문에 ‘지선’이라는 법명은 절 안보다 절 밖에서 더 유명해졌다. 그래서 그를 세속인 보듯 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해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이 폐사지인 까닭
그는 운전도, 카메라 조작도 못 하는 옛날 촌 스님이다. 15살 어린 나이에 출가해 뼈빠지는 절 집안 노동으로 잔뼈가 굵고 ‘중물’이 뼛속까지 스민 천상 스님이다. 그는 휴대전화조차 없는 ‘천연기념물’이다.
지선 스님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처사에게 물어보니 “스님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폐사지”라고 한다. 안거(봄여름 90일씩 참선정진 기간)만 끝나면 전국의 폐사터를 찾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적막한 산속에 기와 몇 조각만 남아 있는, 옛 스님들의 터에 묵연히 앉아 한나절씩 홀로 있다 오곤 한다는 것이다. 올 들어서도 그렇게 강원도 영월 새달사지와 강릉 굴산사지, 충북 충주 청룡사지, 전남 광양 옥룡사지를 다녀왔다고 한다. ‘왜 그렇게 폐사지만 찾아다니는 것 같으냐’는 물음에 처사는 “요새 스님들이 보기 싫고, 옛날 스님들이 그리운 모양이지요”란다. 세속인인지 출가자인지 중도 중 같지 않은 요새 중들을 마음에 들어 할 스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선 스님은 절 집안의 일을 외부에 떠벌리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혁도 필요하지만,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출가자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부도 서품을 받을 때 순명을 다짐하고, 승려들도 출가해 첫 경전인 <초발심자경문>에서 ‘내 집안의 추한 일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외부의 불의와 투쟁해온 실천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보수적’인 모습에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스님이 어떻게 세상 일에 뛰어들었을까’란 물음에 처사는 “오죽했으면 스님 같은 분이 나섰겠느냐”고 되묻는다. 80년 광주항쟁 이후 양심에 찔려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나섰을 거란 얘기다.
» 백암산을 뒤로한 백양사 염화실
급료 안 받는 무료봉사 당연한 일
지선 스님은 전날 출타했다가 정읍역에서 내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았다고 했다.
“택시 기사나 힌츠페터 기자의 모습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우러나는 자연스런 행동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당연한 일’이 이처럼 감동을 주다니!”
그는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했다. ‘비행기 위에서 밤에 내려다보면 종교적 초월처럼 보석같이 빛나는데, 정작 내려와 보면 온갖 자기주장과 이해관계만이 난무한 아수라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급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세속에선 있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무료봉사’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이제 과거를 기념하는 수준을 넘어서 서로를 사람답게 대접하는 민주시민 교육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독일 불자 초청으로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 15일간 머물렀다.
“시민교육이 잘돼 있고, 중요 현안을 늘 합의제로 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에 우선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시민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다. 그는 “일베들이 ‘너 민주화시켜 버리겠다’고 말하듯 ‘민주화’라는 말조차도 오남용이 되는 시대이니 민주화니, 시민이니, 교육이니 말도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대화하며 자기다움, 인간다움, 양심을 찾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그는 보편주의나 글로벌이라는 명분으로 ‘자기다움’을 무시하며 민족마저 고리타분시하는 시각을 경계한다.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 자기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병아리도 감별사가 있고, 잡초에도 뿌리가 있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자기 뿌리를 부정해버릴 수 있겠는가. 자기의 근본을 알고 자긍심을 갖는 것이 자주고 민주다. 그래서 남의 근본도 존중해 주는 것이 평화다.”
내가 존귀하니 당신도 참 존귀
그런데도 약소한 개인이나 민족을 소멸시키려던 나치즘이나 파시즘, 시오니즘, 일본의 천왕주의의 논리에 은연중 동화돼 자기다움을 찾아야 할 약소국의 노력을 오히려 국수주의라고 폄하하는 걸 ‘전도몽상’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남북 문제도 강대국들처럼 힘으로 제압하거나 흡수한다는 것의 한계가 드러났으니 이제 상호 공존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법도 약자의 안위를 돌봐주기는커녕 강자의 입장에서만 적용하면 악법이다. 남북관계도 미국 같은 강자의 입장대로 억압하려만 해서는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지선 스님의 시선은 밖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 자신부터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악인과 싸우다 닮았다고 악이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상대방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알고 인내심을 갖고 설득할 줄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운동이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게 ‘운동’이다.”
예전 체중보다 20여킬로그램이나 줄어든 50킬로그램대 가벼운 체구의 스님이 고개 숙여 합장하며 배웅한다. 그의 겸허한 두 손에서 그 마음이 전해진다.
‘내가 존귀하니, 당신도 참 존귀합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