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아프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면서 자라나지 못하듯이, 모든 소중하고 귀한 것들은 아픔과 기쁨을 함께 어우르면서 생겨납니다. 진흙탕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스스로는 한방울의 흙탕물에도 젖지 않는 연꽃은 바로 그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연꽃보다 우리의 일상에 더 가까이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블루진스 - 청바지의 푸른 색입니다.
4년마다 중부독일의 카셀이라는 도시에서는 세계현대미술박람회 ‘도쿠멘타’’가 열리는데, 올해의 도쿠멘타에서, 아부바카 포파나(Aboubakar Fofana)라는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작가가 쪽물을 들이는 과정자체를 예술로 보여주는 것이 보도됐습니다. 오래 전 쪽물에 감동했던 제 마음이 되살아나며 묘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블루진스는 온세상 구석구석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입는 옷이 되었는데, 원래 그 불루진의 남색이 바로 쪽물이지요. 서양에서는 ‘인디고’라고 불리는 ‘쪽’의 원산지는 이름에서 보듯 인도인데, 쪽의 꽃은 주로 노란 색이나 분황색입니다. 콩을 보면서 간장을 볼 수 없듯이 쪽이라는 식물에는 파란 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쪽물을 얻어내는 과정은 기적같습니다.
100여년 전 남색을 화학염료로 얻어내기 전까지는, 쪽을 커다란 나무나 질그릇 통에 담고 사람의 오줌을 뿌려 며칠동안이나 썩혔다고(발효) 합니다. 얼마나 냄새가 진동했겠어요. 나뭇가지나 해초를 태운 석회도 꼭 넣어야 한답니다. 이렇게 쪽이 썩은 물을 걸러 하얀 천이나 실을 담그는데, 쪽물은 아직 무색입니다. 이제 그 천을 꺼내 여러번 헹군 후 햇빛에 널어 ‘바람을 쐬이면’, 그때서야 바로 우리가 아는 푸른 색이 ‘드러납니다’! 노란 꽃을 피우는 쪽이 보색인 파란 색을 숨기고 있었던겁니다.
청바지의 빛나는 푸른 색이 되기까지는 여러번 담그기와 바람쐬기를(산화) 반복해야 합니다.이렇게 공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쪽이라는 식물이 유럽에서는 인도에서 만큼 잘 자라주질 않으니, 파란 색은 귀하고 비쌀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림에 쓰이는 물감도 파란색은 붉은 색보다 귀하고 비싸서, 파란색은 귀한 사람, 즉 성모 마리아나 예수의 옷자락 정도에나 쓰였지요. 부족함은 그런데 창조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독일의 바이어르씨 집안의 아들 아돌프도 이 귀한 파란 색에 깊이 매료되었었는지 13살 때 부터 25년간 이 쪽물의 화학적변화에 몰두했더랍니다. 25년 후 그가 화학적 인디고 염료를 만드는데 드디어 성공하고 (1870), 레비 슈트라우스의 블루진스는 1873년에 탄생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화학염료로 세계시장에 자리잡을 때까지는 30여년이 더 걸립니다. 그러니 쪽물이 오늘날의 불루진의 한결같은 색채를 줄 수 있는 염료가 되기까지는 고대로 부터 몇 천 년이 걸린겁니다.
오줌과 함께 썩어가는 쪽의 악취와 그것을 견디어가는 기다림과, 바람과 햇빛이 주는 자연의 도움이 없이는 쪽물의 파란 색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인간의 슬기는 바로 이 조화를 알아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쌓여있을 때 우리는 바로 그 안에 빛나는 남색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