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때 혁명가는 준비운동 한 거다” “살림과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남자는 구원받기 어렵다” 함께 사는 친구들과 한동안 되뇌던 말이다.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은 청년 때 직면한 과제와 전혀 다르고 복잡했던 거다.
스물세 살 때, ‘밝은누리’ 운동을 시작했다. 80년대 한국사회가 처한 아픔과 희망에 함께 하고싶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친일매국과 독재라는 역사의 질병이 가시지 않았기에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요구됐다. 혁명가가 지닌 현실 비판의식과 수도자가 지닌 영성을 겸비하고싶었다.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 안팎에 동시에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며 외치고, 기도했다. 졸업장이라는 상품 보다 우리에겐 동지가 더 절실했다. 서로 지키고 추동하고 돌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는 공사판, 슈퍼마켓, 주유소에서 일하며 조금씩 돈을 모아 임대보증금을 마련했다. 나는 신문배달을 했다. 노동의 거룩함과 노동이 처한 어려움을 동시에 배우는 시간이었다.
조그만 돈을 모아 작은 방 하나를 얻어 함께 공부하며 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정과 신념으로 뭉쳐 있었지만, 결혼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며 예기치 않은 위기에 직면했다. 청년 때 신념과 결단, 청년운동에서 얻은 많은 열매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았다. 함께 살다보니, 한 사람이 하는 결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늘 배우자와 자녀들 삶이 얽혔다. 다루는 돈 규모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친정, 시댁, 처가 새 가족관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 어려움을 투명하게 얘기하기 어려웠다. 어디까지 자기 마음이고, 어떤 게 핑계인지 조차 모호했다.
자본 학벌 부동산 분단 등 시대우상들은 먹고, 자고, 입고, 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고, 소비하는 일상생활에서 집요하게 작동했다.
대안을 만드는 것은 중요했다. 대안은 결국 ‘더불어 사는 삶’을 토대로 이뤄진다. 생각은 진보와 개혁이나 실제 삶은 시대우상을 따라 사는 기만을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이제 <밝은누리> 청년들은 서로 힘을 모아 방을 얻고, 마을을 토대로 다양한 과제를 풀어간다. 조작된 욕망과 조장된 불안에 맞설 지혜를 함께 공부하며 동지가 된다. 단순 소박한 삶을 배우고, 결혼식과 혼수자금에 도사린 허상에서 해방된다. 청년실업은 마을 살림 돕고 배우며, 새 꿈을 꾸는 시간이 된다. 마을 이모삼촌 되고 때론 선생님 되어 생명을 함께 키우며, 결혼 후 살아갈 지혜들을 미리 배운다.
마을밥상과 찻집, 문화예술 등 다양한 마을사업이 청년창업 운동과 맞물려 일어난다. 청년은 활기를 주고, 마을은 청년을 주눅 들게 하는 허상을 제거해준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현실화 하는 지혜가 ‘더불어 사는 삶, 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