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인. 한겨레 자료 사진.서울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분들을 위해서 반찬을 준비해주시는 수녀님이 계시다. 한번은 노숙인 한 분이 오셔서 김치를 좀 싸달라고 하셨단다. 사실 한 사람에게 따로 많은 양의 김치를 싸주는 일은 하지 않고 또 배추김치가 떨어져 마침 냉장고에 있는 갓김치를 드렸단다. 그 다음주에 빈 김치통을 가지고 나타나신 그 아저씨, 또 김치를 얻어가면서 당당하게 한 말씀, “거 다음에는 맛있는 겉절이 좀 담가 놔요” 하시더란다. 수녀님이 너무 웃겨서 말도 안 나오더란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당당함이 참 고맙더란다.
지방에 강의를 다녀올 때면 늘 강의를 한 곳에서 한아름 간식을 준다. ‘기차 안에서 드시라, 저녁도 못 드시고 가시는데 간식이라도….’ 무거운 간식 가방을 가지고 서울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러 지하도를 걸어오는 동안 그곳에 계신 많은 노숙하는 아저씨들 앞에 개수가 되는 대로 ‘이것 좀 드시고 주무세요’ 하면서 하나씩 간식을 내려놓는다.
얼마 전 서울역의 긴 계단 중간에 앉아 계신 아저씨에게 떡과 빵 한 개를 놓아 드리고 계단 위까지 다 올라왔는데 그 아저씨의 우렁찬 소리가 내 뒤통수를 울렸다. ‘음료수도 주고 가야 할 것 아니야, 목 메는데….’ 순간 폭소가 터졌지만 갈등도 생겼다. ‘그냥 갈까? 몇 시간 지방 강의를 다녀오는 길이라 내 몸도 천근인데….’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한참을 걸어가서 편의점에서 우유 한 병과 생수 한 병을 사 가지고 다시 그 계단을 내려가 아저씨 앞에 드렸다. 다시 계단을 올라오면서 나는 속으로 ‘아저씨, 멋져, 짱이야’ 하면서 웃었다.
서울역 근처 쪽방에서 생활하시던 김씨 아저씨가 대장암에 걸려서 주민센터의 요청으로 모현호스피스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한 달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늘 반찬 투정을 하고 우리에게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시던 그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떠나시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지난 병원에서는 치료를 받는 동안 너무나 무섭고 아프고 힘들어서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 했다. 자살 시도도 했고 또 쥐약이라도 사다 먹고 죽으려고 여러 번 결심했다. 그런데 이곳 호스피스에 오니 안 아프고 너무나 행복해서 살고 싶어졌다. 살려고 갔던 병원에서는 죽고 싶었는데 죽으려고 온 병원에서는 살고 싶어졌다. 행복하게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참 고맙다. 삶의 나락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 아저씨들의 모습이 고맙고 또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감을 보여주기 위해 현존하는 우리의 삶 안에 함께해 주어서 고마운 분들이다.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