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살기보다는 다른 고장에 가서 사는 경우가 허다한 때에는 고향이라는 말이 참 무색해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다 이북에서 오셨고 이사를 많이 다닌 제게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늘 난감했습니다. 복숭아 꽃, 살구 꽃이 피는 고향? 그게 어디지? 그래도 명절에 부모님께 가는 길은 귀향길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로는 딱 부합하는 단어가 없는데, 독일어로 고향은 ‘하이마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세대는 고향이라는 말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데, 거기엔 나치 독일이 ‘고향’을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사회국가주의 이념을 심기위한 방편으로 왜곡시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일환으로 많이 부르던,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까지 배우는 독일 민요들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거의 불려지지 않고, 영화에서 보던 술집에서 목청 높여 함께 노래하던 독일인들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독일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제게 독일 친구들이, 함부르크가 저의 제 2의 고향이냐고 묻습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았어도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고, 독일어로 토론하고, 심지어 독일인을 상대로 심리치유사로서 일하면서도, 이게 내 고향? 이라고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에 좀 답답한 느낌이 있습니다 .
가장 어려운 고비는, 결혼했을 때와는 달리 아이를 낳고나서였습니다. 이젠 정말 이 땅에 말뚝 박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에 좀 들지않았던 독일 말, 기후, 거칠은 태도, 덤도 에누리도 없는 철저함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지고,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오그라드는 듯 했습니다. 애꿎은 남편을 향해 비판하고 짜증을 내지만, 화풀이가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불만과 우울 덩어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친구에게 그런 제 마음을 호소했더니, 자기는 독일인이면서도 늘 이방인이라는 느낌으로 산다면서, 그런 자기에게 도움이 된 책이 있다고 추천했습니다. 빌렘 플루써라는 분이 쓴 ‘이민자의 자유에 대하여’라는 책입니다. 그 책 속의 한 줄이 저의 고향이라는 관념의 감옥에 갇힌 마음을 풀어줄지 몰랐지요. 나치를 피해 어려서 브라질로 망명가 60여년을 살았던 그 분은, 자기에게 고향은 브라질이라는 땅이 아니라 자기가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독일 땅에도 작게는 제 가족에게, 크게는 저의 삶과 연결된 이 사회에서 제가 책임질 사람들이 많더군요. 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이 고향이구나! 한국과 독일에 있는, 또한 독일에 살고 있는 너무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수 많은 다른 ‘이방인‘들과의 연계가 바로 내 고향이구나!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어디에 사는지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아졌어요.
매일 아침 손짓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 야채가게의 터어키 아저씨 투란, 유기농 슈퍼 앞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신문을 파는 루마니아 아줌마 아르젠티나, 시리아에서 동생과 둘이 피난 온 모하메드, 가나에서 온 청소도움이 에스터, 우리 집주인 독일 할머니 헬비히...모두가 제 고향들입니다. 이제는 한국에도 (다행히) 전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또 거주합니다. 그 분들에게 고향이 되어주시고, 그 분들이 당신의 풍성한 고향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승연(재독 심리치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