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황규인 원장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봉제산 아래에 발달장애인거주시설 교남소망의집이 있다. 발달장애인 105명이 다니는 교남학교도 이 안에 있다. 주민들의 반대로 발달장애인 공립특수학교 설립이 위기에 처한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와 같은 강서구 관내다.
마당을 지나던 발달장애인 선희씨가 황규인(56) 원장에게 기우뚱기우뚱 걸어와 팔짱을 낀다. 그리고 전날 봉사자들과 함께 만들어 낀 팔찌를 자랑한다. ‘몇살이냐’고 묻자 손가락 두개를 펼쳐보이며 해맑게 웃는다. 몸은 성인이지만 영락 없는 두살배기다. 이곳엔 선희씨같은 발달장애인 29명이 사랑, 믿음, 온유, 화평 4개의 가정을 이뤄 살고 있다.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무연고’다. 뇌병변과 지체 중복장애인도 6명이 있다. 대부분이 중증인 1급장애인들이다.
건물 어디에선가 알듯모를듯한 목소리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가끔씩 이상한 괴성이 터진다. 황 원장은 “그런 소리들도 다 거주(장애)인들이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란다. 그들에겐 언어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소음은 이곳에선 오케스트라의 반주 정도다. 거주인들이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다르다. 어떤이는 가게에 들어가 2천원짜리 물건을 들고는 1천원만 내고 가져가겠다고 떼를 쓴다. 그럴 때면 지도교사가 달려가 제지한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한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거나 바지춤을 내리고 있는 것을 제지하다보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 정도는 자해하거나 상해를 입혀 피를 줄줄 흘리는 사고에 비하면 양호하다.
발달장애인들이 시설 안에서 사는 것도 이처럼 녹녹지않다. 그런데 28명은 밖에 나가 산다. 대부분 빌라를 빌려 서너명 장애인이 한명의 지도교사와 한가정을 꾸린다. 그런 집이 지하철 화곡역에서 걸어서 20분 내 거리에 무려 16채다. 강서구청 옆에 있는 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가 그룹홈을 지원하는 본부구실을 한다. 인근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열림일터도 있다. 모두 교남소망의집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격리된 장애인 시설이 설립되는 것도 주민 반대로 어려운 마당에 어떻게 장애인들이 일반인들 속으로 들어가 살수 있게 됐을까. 일반인들 속에서 일반인들처럼 자고 먹고 일하고 살아가는것은 많은 장애인들의 꿈이다. 그러나 이들을 ‘관리’하는 누구도 장애인들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않는다. 발달장애인들이 밖에 나가면 크고작은 골칫거리들이 많아질 게 틀림없으니 직원들도 공무원들도 일이 번다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장애인의 부모들조차 “머리도 모자라는 아이들을 밖에서 살게 해 어쩌자는 것이냐”며 “돌보기 싫어서 내보내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 몸은 성인이지만 지능지수는 어린아이같은 발달장애인의 손놀림을 보며 웃고있는 황원장
» 예술치료의 일환으로 미술활동을 하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들. 사진 교남소망의집 제공
» 황원장을 보자마자 보여줄게 있다며 잡아끄는 발달장애인 선희씨
그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36년간 이곳을 지켜온 황 원장이다. 이곳이 1952년 그리스도정신의 실천을 표방하며 설립된 기관이긴하지만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가 아니다. 키 150센티미터의 단구의 평신도다. 이곳에서 25년간 일했다는 재활부 김진(48)팀장은 “황원장을 내가 만화로 그린다면 장애인들을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게 마련인 기독교 시설들의 목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가 조용히 장애인들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황원장은 늘 장애인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니라 장애인들이라는 기준을 놓치지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할건데라고 교사 입장에서 하지말고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일단 장애인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설명해주고 교감하며 그들 편에서 그들의 욕구를 최대한 들어주게 한다는 것이다. 훗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로 알려져 세상을 분노케한 장애인특수시설 광주 인화학교 아이들이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던 2004년 이곳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인권실천 기준이 정해졌다. 이 기준은 우리나라 모든 장애인시설 인권 기준의 표준이 되었다.
그가 벌인 일들은 하나같이 처음엔 공무원들도 원하지않고 기준도 없어서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없던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관리자의 입장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하지않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룹홈도 이곳에서 재활교육을 받은 뒤 밖에서 일을 해 39만원의 월급을 받아온 장애인을 도울 생각을 하다 시작하게 됐다. 장애인이 어렵게 번 돈을 어떻게 관리해줘야할까, 장애인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해야하고, 식당 불이 꺼진 이후에 들어오는 그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하다가 떠올린게 그룹홈이었다. 1999년 처음 그룹홈을 만들때는 장애인들 이름으로 집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가 살던 집을 내주었다. 그리고 자매장애인들의 시설 밖 생활 안착을 위해서 그는 매주 이틀씩 3년간이나 그룹홈에서 함께 지내주었다. 발달장애인들이 해내기 어려운 돈계산도 돕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이나 무시 당하지않게 어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엿다.
황원장이 두딸로부터 ‘엄마는 도대체 누구 엄마야’라는 하소연까지 들으며 이렇게 시설 밖 그룹홈을 만들어준 것은 그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고싶어서였다.
» 서울 지하철 5호선 화곡역(강서구 화곡동)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 거주지와 일터들
“표현하지못하는 장애인들도 실은 부모와 가족을 몹시 그리워하지요. 그래서 처음엔 방송에도 내 부모를 찾아줬어요. 부모를 보고나면 집에 가겠다고 하는데 부모는 데려가지도 않고 나중엔 연락을 끊어버린 일이 많았지요. 장애 자체만으로도 삶이 너무도 버거운데 두번 세번 버림 받은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그는 장애인들의 혈육찾기를 포기하고 자기가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재활이 가능한 장애인들 입장에서 일할 곳이 필요해서 열림일터를 만들었고, 일반인들보다 일찍 노화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농사도 짓고 요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해 만든것이 파주 어유지동산이었다.
시설 안에서만 장애인들을 돌보기에도 예산이 빠듯한데도 늘 시키지도 않는 일을 앞서 하느라 이곳에선 재활용품까지 주워서 팔아가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왔다. 최근 700여개 시설이 가입돼 있는 전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회원들이 전례없이 그를 95%의 찬성으로 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그의 선구자적 업적들을 인정한 때문이다.
그런 선구적인 노력조차 성과보다는 더 많은 골칫거리를 낳는게 이 분야 일이다. 장애인들에게 괴성같은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 사람들을 놀라게하지않도록 아침 7시전에는 창문도 열지말라고 하고, 옷을 늘 깔끔하게 입도록하고, 인사도 잘하도록 교육 또 교육하지만, 장애인 혐오자들이 그룹홈 앞에 쓰레기나 썩은 젖갈을 일부러 버린 것을 보면 속이 상해 잠을 이루기 어렵다. 얼마 전엔 그렇게 성교육을 시켰는데도 그룹홈에 사는 여성장애인이 동네 할아버지 꼬임에 넘어가 노래방과 모텔까지 따라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장애인 자식을 버려놓고는 어렵게 자립기금을 마련한 것을 알고는 연락을 해와 그 돈을 뺏어가는 부모들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황규인 원장의 손글씨
그런데도 그는 장애인들을 장애인들만의 담장 안에 가두지않고 일반인들 속에 섞여 일반인과 장애인, 부자와 빈자, 남,녀,노,소가 어울려사는 세상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울려 살게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장애인들이다. 그는 “속일줄도 거짓말 할줄도 모르고 이렇게 순수하게 어린이 같은 사람들을 보았느냐”며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을 들려주었다.
교남소망의집에서 만들어졌다가 담장 밖 인근에 세워진 교회도 있고, 일요일이면 이 안에 와 예배 드리는 목사도 있지만, 그는 장애인들이 여러 교회의 일반인들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크리스찬들도 이 말씀대로 해볼 수 있게 그들 곁으로 보내줘야지요”
장애인들을 시설이나 장애인교회 안에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삶터로, 다양한 교회로 일반인 속으로 내보내서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그가 믿는 진정한 ‘복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