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집착하는 자아가 본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개인이라는 개체로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들은 삶의 주체와 행위자로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자면 우리는 무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통찰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 여기서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본래부터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자아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관습적인 현상으로서 자아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공성론의 핵심이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무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공성에 대해 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불교의 가르침을 수행하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마응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이란 우리 몸과 마음-감각, 지각, 의지, 인식-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온(蘊)이 업과 번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의 이 중생은 과거의 미혹과 번뇌가 모여 만든 결과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경험하게 될 고통과 번뇌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이 강해야 한다.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出離心)은 번뇌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은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포기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계속해서 무지에게 조종당한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가망은 없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골칫거리에 휘둘릴 것이다. 이런 악순환, 윤회의 고리를 완전히 타파하려면 윤회하는 중생이 겪는 고통의 본성을 이해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열망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포기이다.
<달라이라마 반야심경>(텐진 갸초 지음, 주민황 옮김, 하루헌 펴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