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음치인줄 익히 알고는 있었는데, 이제 보니 박치까지 하시네요” 몇 해 전
도반 스님이 건넨 핀잔이다. 어느 불교 행사에 의식 집전을 하는데 반야심경을 따라 하는 불자들이 들쭉날쭉하는 목탁 연주에 박자를 맞추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아, 내가 음치와 사이 좋게 박치까지 겸비했구나. 서툴다 못해 아둔한 품새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노래는 단연 압권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날 폭우가 쏟아지를 기도했다. 음악시간은 가슴 졸이는 시간이었다. 중학교 시절 2년 동안 교회에 다녔는데 간절한 신심으로 찬송가를 부르면 주변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절에서는 노래하는 고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어인 찬불가? 지독한 음치이기 때문에 대흥사에서는 후배 스님들이 의식할 때 염불을 크게 하지 말라고 조심스레 주문하기도 한다. 이렇듯 매사에 사는 일이 어설픈지라 ‘치’(癡)에 해당하는 항목이 여러 개다. 간단한 조립도 못하는 기계치, 수없이 가본 길도 못 찾는 길치, 열 번 이상을 만난 사이인데도 장소와 옷이 바꿔지면 몰 알아보는 사람치, 내가 쓴 글씨를 며칠 후에 못 읽는 글씨치. 그래서 이십대 초반에 승복 입고 타자 학원에 다닌 적도 있다. 오죽하면 서예 선생이 “스님같이 재능 없고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가르치기를 포기했겠는가. 그리고 방과 옷장을 단정하고 체계적으로 못 챙기는 정리치이기도 하다,
악기 하나쯤은 배워 연주하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다. 누구는 조선 후기 이덕무가 말한, 책보는 일에 재미 들렸으니 간서치라고 위로하기도 하는데 세상 물정에 어둡고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니 그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말하고 글 쓰는 재능마저 없었다면 아마 부모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절망하기도 했을 것 같다.
어떤 재능이 있으면 세상 사는 일에 매우 유익하다. 자신도 즐겁거니와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예능과 기예에 능한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럽다. 그런데 어느 때 우연히 부안 내소사의 혜안 스님의 시를 접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일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선사는 ‘멋진 사람’이라는 시에서 말하고 있다. “봄이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구태여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노래을 못해도 감흥에 젖어 흥겨울 수 있고, 글을 못 써도 책을 읽고 내용과 의미에 공감할 수 있다. 누구든지 마음 다해 눈을 뜨고 귀을 열면 온갖 아름다움과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감수성이라는 특별한 재능. 감성지수를 높이는 일이 최고의 재능이고 복락이겠다. 그래서 선사는 이렇게 노래했나 보다. 산창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을 아니 배워도 좋고,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고 난초 잎을 손질할 줄 아는 이라면 굳이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