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70년대를 풍요롭게 살아 보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우리 집도 역시 남들처럼(?) 가난했었다. 김치찌개에 조금씩 넣어 먹던 돼지고기 말고는 아버지 월급날이나 되어야 후라이팬에 덩어리 고기를 한번쯤 구워 먹을 수 있었던 시절, 그래도 마당에는 작은 꽃밭이 있어서 꽃을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앞 줄부터 채송화, 봉숭화, 국화, 맨드라미, 맨 뒷줄 해바라기까지 키순서대로 골고루 심어 놓으셨다. 물론 한 켠에는 가지, 오이, 호박, 근대, 고추, 상추 등도 한 줄씩 차지하고 있었다. 한평 남짓한 그 밭에 이 많은 것을 심어 놓았으니 양이야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두부 한모, 콩나물 한봉지 외에는 성큼 사기 힘든 엄마에게는 큰 살림의 보탬이 되었다. 그래서 꽃밭을 즐기는 할머니와 야채 한 줄 더 심고 싶어하는 엄마와는 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었다. 난 엄마가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수녀원 입회 후 어머니 생신에 집에 가면서 동생에게 ‘엄마에게 뭘 사드릴까?’라고 물으니 꽃을 사오란다 이 말에 나는 대뜸 ‘야, 엄마는 꽃 한다발보다 돼지고기 한근을 더 좋아하실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남동생이 하는 말, ‘누나가 뭘 모르는 군,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꽃은 다 좋아해요’ 동생의 충고에 나는 후리지아 한 다발을 사가지고 갔다. 그 때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시며 ‘이 꽃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하시면서 꽃에 코를 부비면서 그 향기를 흠뻑 들이 마시기를 반복하셨다. 난 그 때 깨달았다. 우리 엄마도 가난한 살림을 쪼개면서 자식들 키우고, 조카들 뒷바라지 다하고 큰 집 제사까지 다 맡아서 지내던 여장부가 아니고 그냥 보통 여자였다는 것을....
평생 농사만 짓던 할머니의 거칠고 오그라진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드린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시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언니 매니큐어를 한번 훔쳐 바른적이 있는 데 그 때 아버지가 커서 기생되려고 그러느냐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고 대드는 딸을 번쩍 들어 여물통에 집어 넣으셨단다. 그 충격으로 매니큐어는 커녕 화장품 한번 발라본 적이 없는 데 결혼하고 좀 여유가 생겨 화장을 좀 했더니 퇴근한 남편이 ‘너 남자 생겼냐’며 손찌검을 하더란다. 그 이후 할머니는 정말 한 번도 치장을 해 본 적이 없으시단다.
처음에는 거절하시더니 며칠 후 부터는 날마다 새로운 색깔로 칠해달라며 수줍게 손을 내밀고 사진을 찍고는 하셨다. 주말에 방문하는 두 아들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그들은 ‘에이,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하셔요’ 그래서 내가 ‘아들들이 뭘 모르는 군,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예뻐지는 것은 다 좋아해요’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이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나온 반짝이 들어가 있는 매니큐어 한 셋트를 사왔다. ‘수녀님, 저희 엄마같은 분들에게 예쁘게 칠해 주세요’ 그러신다.
힘들고 가난하게 살던 시절 여자이지만 악착같이 여장부로만 삶을 살아내셨던 우리들의 어머니들, 할머니들에게 여자를 돌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