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에 막 들어온 예비 수녀들에게 강의를 하는 중에 '디지털 경력서'를 써보라고 했다. 나와는 세대가 완전히 달라서 디지털 원주민인 이들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할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쓴 디지털 경력서를 받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디지털 바다에 빠져 살아왔단느 사실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텔레비전에 묻혀 살았고, 어떤 이는 초등 저학년부터 폭력적인 게임에 빠져 살았단다. 심지어 어떤 예비 수녀는 "태아 때부터 텔레비전을 즐겼다"라는 표현을 썼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텔레비전을 즐겨 보았다는 의미일 게다. 본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거의 '중독'이었다는 고백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이 있었다.
"영적인 것에 눈뜨게 되니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되었어요."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컨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줄었어요."
현재 이들은 스마트폰 없이 수녀원에서 매일 매일을 기쁘게 살아가고 있단다. 더 높은 목적, 영적인 욕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은 게 아니라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포기하게 되더란다.
포기한다는 것과 참는다는 것은 다르다. 참는 것은 유혹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억지로 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한다는 것은 유혹을 느끼지만 지금의 이 유혹보다 더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행복을 찾겠다는 지향성을 스스로 의식할 때의 모습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유혹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 외로웠는지도 몰라>(김용은 지음, 애플북스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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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을 다녀보면 한국만큼 핸드폰을 많이 쓰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선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분들도 적지않지만, 한국에선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전동차에 타고 내릴 때조차도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떼지않는 이들이 많지요. 가히 심각한 중독 수준입니다.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미국 뉴욕주의 기독교공동체 브루더호프에 머물면서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조차 핸드폰을 하지않고 살아가는 그들 모습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들을 보았지요. 스마트폰에 혼을 온통 빼앗겨버리지않은채 사람과 자연과 일 등 주위의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지요.
청소년 교육수도회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살레시오사회교육문화원장인 김용은 수녀는 디지털 중독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말해줍니다. 그는 이런 중독된 습관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아둔 외로움과 슬픔, 고통과 분노로 얼굴진 내면의 거울 때문"이라며 "에스엔에스를 해도 외로움과 슬픔과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애쓰면서 외로움을 감추고 심심함을 없애는 일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내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는 바로 나의 습관에 달려있다"며 "이것을 알아차리고 깨어 바라보기 위해 그 습관을 솔직하게 마주해 외로움이 키운 습관들과 화해하면서 행복한 의식의 빛에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