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인접해 있는 도심리 마을에 85세 되는 아버지와 단둘이 컨테이너로 된 집에 박윤식이라는 형제가 살고 있습니다. 이형제는 군복무 중에 벌을 받다가 선임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허리를 다쳐서 뼈가 두 개나 부러졌습니다. 척추수술을 해서 간신히 걸어 다닐 수는 있지만 무거운 것은 절대 들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정부로부터 생활 보호대상자로 지정이 되어 보조금인 월 30만 원으로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고통이었기에 늘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겨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삶에 대한 좌절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가끔 방문해서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가 살고 있던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서 새 주인이 그 집을 비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었는데 땅 주인이 청부 폭력배들을 동원해서 형제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기물들을 부수고 강제로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수도 시설도 부서뜨리고 전기선마저 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아 추운 상태로 겨울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를 방문하여 그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150만 원의 이사비용을 받고 이사하기로 땅 주인과 합의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옆 동네인 풍천리에 이사할 수 있는 빈집이 생겼습니다.
당시 공동체에서는 선교사 훈련이 있었습니다.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그 형제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후,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해 보니 그 부자(父子)는 이삿짐을 다 옮기고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삿짐은 컨테이너로 옮겼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외부에 설치해 놓았던 보일러 장치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허리가 아파서 쇠로 된 보일러를 들지 못하고 있고 연로한 그의 아버지 역시 도저히 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 곳에 도착해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다른 짐들은 다 옮겼는데 저 보일러는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 부자(父子)는 보일러를 가리키면서 볼멘소리로 자신들이 도저히 들 수 없음을 하소연이나 하듯 말했습니다. 보일러를 움직여보니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와서 바퀴 달린 짐수레를 가지고 다시 그 곳으로 가서 보일러를 차에 옮겨 실었습니다. 보일러를 차에 싣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보일러 때문에 근심하고 있던 이들은 쉽게 문제가 해결되자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거기에다 추운 날씨에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커피와 차를 가지고 가서 함께 마셨습니다. 그 형제의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말했습니다.
“이사하는데 동네사람 중에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런데 목사님이 오셔서 보일러도 차에 실어 주시고 따뜻한 커피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구세주입니다.”
그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박윤식 형제도 겸연쩍게 웃으며 거듭거듭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맞아요. 목사님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너무 과분한 말을 들었기에 저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만큼 도와준 것이고 이것은 저에게 대단한 것이 아닌데 그들에게는 구세주를 만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사할 장소까지 가서 보일러를 내려 주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구세주 되는 것 어렵지 않네.’라고 스스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의 필요를 알고 그와 함께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그의 필요를 도와준다면 그 사람에게 그는 바로 구세주가 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창세기에 처음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입니다. 다른 피조물은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지만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에 독처(獨處)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만약 아담이 완벽한 능력의 소유자였다면 도움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고 그 후에 하나님은 비로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 전쟁, 기근 등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환경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봅시다. 한 발 한 발 그들에게 다가가 보십시오. 이미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그들의 입술로부터 들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보니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