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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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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스트레스 가득한 서울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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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박종식-.jpg» 여의도한강공원에 앉아 밤섬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진 박종식 기자


섬에서 육지를 보고 육지에서 섬을 보다

 

20대 예닐곱 명과 어울려 문화답사 삼아 주말에 선유도 공원을 찾았다. 겨울 끝자락의 강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래도 봄기운을 살짝 머금은 따뜻함이 사이사이에 느껴진다. 양화대교 다리 위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대뜸 섬 맞아요?”라는 질문아닌 질문이 튀어나온다. 공원 앞뒤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섬은 섬인 것 같다고 대답아닌 대답을 했다. 그런데 대교는 섬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의 남북을 마주하고 있는 육지와 육지를 이어주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섬은 단지 교각을 세우기 쉽다는 공학적 경제적 이유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섬은 시각적으로 연결된 땅이지만 물리적으로 고립된 땅인 탓이다. 기여만 하고 혜택이 없던 섬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끼워넣기 삼아 만들어진 진입로인지라 뭔지 모르게 구조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하지만 다리 밑의 강물은 교각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저 무심하게 흘러왔을 것이다.

 

본래 섬이 아니였다고 한다. ()처럼 한강으로 돌출되어 신선이 노닐만큼 경치가 좋았던 선유봉은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권력자의 정자가 세워졌으며 화가의 작품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에 군사적으로 필요한 시설을 보강하면서 암석과 모래를 여기서 채취했다. 인정사정없이 파다보니 어느 새 인위적인 섬으로 바뀐 것이다. 용도가 다해 버려진 섬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필요에 의해 시멘트 구조물이 더해졌다. 도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양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한강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그 섬이 다시 물을 담게 되는 또다른 순환적 모습으로 바뀌었다. 인근의 밤섬 역시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골재조달을 위해 없어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시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강물을 따라 온 모래와 흙이 퇴적되면서 수십년만에 본래보다 더 큰섬으로 회복되었다. 지금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섬도 자생력을 지닌 말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선유도 공원을 만든 조경가 정 영선 선생과 건축가 조성룡 선생은 모두 면식있는 어른이다. 스쳐가듯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것도 인연인지라 선유도 공원은 또다른 느낌으로 닿아온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그 사람의 또다른 모습인 까닭이다. 가장 어려운 화장은 안한듯한 화장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가장 어려운 조경은 손대지 않은듯한 자연스런 조경이라고 한다. 정 선생은 그런 조경을 추구했다. 조 선생은 우리들의 몸이 세월을 느끼고 그 세월의 흔적을 새기는 것 처럼 그 땅이 지닌 과거의 기억을 존중코자 하는 철학의 소유자다. 어떤 장소이건 세월을 느끼고 세월을 살아가고 세월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과거를 음미하면서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현재의 모습을 추구한 당신의 건축관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말을 사석에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세우는 것만 건축이 아니라 부수는 것도 건축이라고 했다. 그래서 철거회사도 ‘00건축이란 상호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용도폐기된 양수장 건물에서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보탤 것은 보탠 것이 현재의 선유도공원이다.


선유도3-이종근-.jpg» 밤섬과 선유도공원. 사진 이종근 기자

 

선유도4-김정효-.jpg» 선유도공원. 사진 김정효 기자


취수펌프장을 재활용하여 만든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삐죽한 낡은 기둥이 강바닥까지 맞닿아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기념비 삼아 남겨 둔 몇 개의 시멘트 교각을 생각나게 한다. 눈을 돌리니 한강너머 높다란 빌딩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 뒷편 북한산이 미세먼지 속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섬에서 섬을 보기도 하지만 섬은 육지를 보기 위한 장소도 된다. 젊은이들에게는 강건너 있는 대학캠퍼스에서 순위를 다투는 공부전쟁과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바다에도 섬이 있지만 강에도 섬이 있다. 바다의 섬은 나름의 독자성이 강하지만 강 속의 섬은 늘 육지와 함께 한다. 예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당할 때 바다의 섬보다 육지의 섬이 더 선호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바다 섬보다는 육지 섬이 돌아올 확률이 훨씬 높고 유배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의 경중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탱자나무 숲으로 두른 땅을 섬 삼아 가두어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육지 속의 심리적 섬이라 하겠다. 오늘날 스스로 이라고 하는 섬에 자기를 가두는 방콕족도 늘고 있다. 그 정도가 지나친 히끼코모리라는 말 조차 이제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스스로의 유배를 통한 스스로의 구원방식인 셈이다.


당나라 때 마조(馬祖709~788)선사는 동그라미를 땅 바닥에 그려놓고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入也打不入也打)”고 했다. 이래도 맞아야 하고 저래도 맞아야 한다. 섬에 들어가도 맞아야 하고 섬을 나와도 맞아야 한다. 도피를 위해 섬으로 갔다면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섬에서 나와 삶의 현장에 서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갖가지 스트레스로 얻어맞을 일 밖에 없는 것이 사바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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