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은 ‘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말하곤했다. 그런데 이 세 번만 울어야 하는 기회에 아내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 울어도 된다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달 시작한 사별가족 모임 ‘샘터 27기’엔 아내를 떠나 보내신 세 남자가 있다. 남자라고 펑펑 울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가족이나 친척,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분들은 그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실컷 나누거나 눈물을 원 없이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무심코 아들의 방을 두드리면서 ‘아들, 빨리 일어나서 학교가야지’ 그러다가 그 방문앞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죽었지, 이 세상에 없지’라는 현실이 훅 다가온 것이다. 출근을 하려다가 이 모습을 본 남편이 호통을 쳤다. ‘남편 출근하는데 재수없게 여자가 아침부터 대성통곡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바로 내게 뛰어오셨다. ‘이렇게도 모진 남편하고 살수가 없다, 자식 보내놓고도 어찌 저렇게 멀쩡하냐, 나 혼자 낳아 키운 자식이냐’라고 펑펑 우셨다. 나는 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남편도 울고 싶으실 거예요. 그런데 울 기회, 울 장소가 없어서 못 우시는 거예요. 오늘 저녁 퇴근하시면 두 분이서 아들 얘기하면서 같이 우세요’
어느 날 경남 통영에서 어떤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시면서 그냥 ‘아들 죽은 사람 한명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샘터’를 먼저 경험했던 인천에 사는, 아들 떠나보낸 분에게 전화를 걸어 동반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아들 떠나보낸 아버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 내가 만나주겠다’는 것이다. 그 통영의 아저씨는 서울까지 올라와 인천에서 오신 분과 하염없이 울고는 했다. 서너번 그렇게 하더니 ‘이제 됐어요, 감사합니다’하고는 내려 갔다.
아내 떠나보낸 사람이 있으면 전화통화라도 한번 하게 해달라고 목포에서부터 연락온 분이나 일주일에 한번씩 광주에서 올라와서는 ‘실컷 울려고 일주일 기다렸어요’하는 분이나 모두 평생 세 번만 울기를 허락받은 남자들이었다. 우리 모두 남자들에게 평생 열 번, 백번 울어도 괜찮다고,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이별을 했을 때에는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울어도 괜찮다고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래도 된다, 그럴수 있다, 괜찮다’라는 말만 해 주어도 그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