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
» 경의선 숲길. 사진 서울시 제공
» 경의선숲길 사진 이병학기자를 잡은 후 ‘경의선 숲길’로 가자고 했다. 낯선 이름 때문인지 기사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재빠르게 C가 핸드폰 티맵에 검색어를 올린다. 운전을 보조하는 기계음을 따라 마포구 연남동 방향으로 달렸다. 거의 다와서야 “아~ 여기요!”하면서 이제사 알겠다는 듯 차를 세운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애용하는 건축재료인 녹슨 철판에 한글과 영어로 새겨진 가로 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경의선은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과 연결되면서 가장 많은 교통량을 자랑하던 황금노선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가는 철길인 까닭이다. 압록강 철교만 넘어가면 바로 중국 단둥(丹東)이다.
안경을 고쳐 써가며 옆구리 면에 쓰여진 안내판을 열심히 읽던 B는 “경의선이라고 하길래 의정부 가는 길인줄 알았더니 신의주네!”라고 하면서 탄식어를 내뱉는다. 7080세대인지라 휴전선 이남의 지명으로 국한된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 살아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3명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신세대는 ‘연트럴파크’라고 부른다. 연남동과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합했다. 북쪽이 막혀 있으니 아예 동쪽으로 태평양을 날아다닌 경험치가 쌓인 결과일 것이다. 없어진 철길의 이미지도 그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너무 ‘나가버린’ 네이밍이긴 하지만 톡톡튀는 동서문자의 조합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철길이 몇 년 사이에 어느 날 도심공원으로 바뀌었다. 철길은 빠른 속도로 달리며 스쳐가는 길이었지만 공원길은 천천히 걸으면서 머무는 길이 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시대에는 양옆으로 낡은 경계선으로 얼기설기 가려진 칙칙한 길이였지만, 천천히 걷는 시절에는 담장을 대신한 노천카페와 맛집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상호와 인테리어가 사람들의 발길을 더 오래토록 묶어둔다. 제철을 만난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고 봄물이 오르기 시작한 연두빛 나무들 사이로 만들어진 인공물길은 아직도 건조된 상태이다. 곧 물길이 열릴 것이고 밤에는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며 또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촉촉하게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시공자는 군데군데 레일의 흔적을 남겨 철길이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적처럼 물증으로 기록해 두었다. ‘나를 잊지말라’고 외쳤던 철길의 기능을 위해 지하철도를 새로 만들었다. 알고보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옮긴 것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가 없어졌다고 여긴다.
» 경의선 숲길 공원. 사진 이병학 기자
어린아이와 반려견의 행복한 나들이 표정을 바라보며 우리일행도 넓은 소매자락으로 바람소리를 내며 운동삼아 씩씩하게 걸었다. 공원 마지막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니 길 끝의 고가도로 다리 아래 펴놓은 서너개의 평상에는 해방세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몇 개의 바둑판을 마주한 채 삼매에 빠져있다. 그 뒤로 멀리서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 굳은 표정으로 공원방향을 향해 재빠른 걸음으로 오는 남정네와 눈길이 마주치기도 했다.
기술에 따라 철길도 그 모양을 달리하기 마련이다. 터널 뚫기와 다리세우기 실력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산과 강의 지형에 순응하는 곡선철길이 많았다. 세태가 바뀌면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주변의 요구에 따라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직선화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폐철로가 생기면서 고철로 뜯겨 팔리거나 대장간으로 갔고 폐침목은 교외에 새로 짓는 별장의 가파른 언덕길 계단으로 전용되기도 했다. 교통량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왕복노선을 달리한 복선화도 이루어졌다. 넓어지는 철길에 반비례하며 승객과 화물의 수요가 작은 역에는 열차의 정지횟수가 차츰차츰 줄었다.
» 경의선 숲길 공원. 사진 이병학 기자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기차가 서지않는 간이역도 점점 많아졌다. 이후 역사(驛舍)의 기능을 상실한 간이역은 철도를 이용하여 오가는 승객이 아니라 자동차를 몰고 온 관광객이 찾아가는 근대문화유산 혹은 옛추억을 찾는 장소로서의 가치가 더 부각되는 용도로 바뀌었다. 다행히 뜯기지 않고 남은 폐철로는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가 다니는 관광철도로 되살아 난 곳도 있고 노선변경으로 인하여 폐기된 터널은 와인저장고 등으로 변신하면서 지역경제의 효자노릇을 자청했다. 직선화 복선화 이후로 간이역 숫자가 늘어나더니 고속철이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거장이 간이역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몇 분 단위로 운행되는 지하철에는 간이역이 없다.
길은 필요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며 또 넓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용도가 폐기된 채 을씨년스럽게 버려진다. 반대로 없어지다시피한 토끼길, 나무꾼길, 과거시험 보려가는 길, 임금님 행차길 등 묵은 옛길을 살려 다시 둘레길로 정비되었다. 예전에 편의를 위하여 덮었던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고 다시 흙길로 복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길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 만들고 이용하고 수리하고 교체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순환법칙을 따라 생기고 유지하고 없어짐을 반복하는 것이다. “본래 길은 없다. 내가 가면 길이 된다”고 호기있게 외치는 사람도 있지만 본래 있던 길도 없어진다는 사실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