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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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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엄마가 이상해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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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겨울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등에 업었다. 젖먹이 때 엄마 등에 달려 있던 내가 이제 그분을 등에 업고 중환자실로 달려가야 하는 심정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소년 시절 사고를 당해 엄마 등에 업혀 병원으로 실려 갔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위기는 파도를 타고 계속 넘어온다는 말처럼, 응급실에 이어 중환자실, 장기간 재활병원 입원으로 이어지는 참으로 길고도 추웠던 지난겨울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자식들에게 용기를 주던 엄마가 마치 태엽 풀린 장난감 비행기처럼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란 이름의 무서운 파괴력이다.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애틋하게 만드는 단어 역시 ‘엄마’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인 엄마가 점차 어린애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동병상련이란 말처럼, 병원을 자주 출입하다보니 사랑하는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이 든 자식들의 남모를 고통과 사연도 자주 듣게 된다.


“우리 어머니 때문에 미치겠어요. 집에 오는 간병인들이 일주일을 버티지 못해요. 얼마나 닦달해대는지 옆에서 봐도 너무 심해요. 더구나 시계나 돈이 없어졌다고 간병인을 자주 의심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보면 당신이 어느 구석에 꼭꼭 숨겨놓고도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거죠. 이분이 제가 좋아하던 엄마인가 가끔 자문해본다니까요!”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 제 어머니는 밤새 한두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가야 합니다. 제가 잠들려고 하면 또 화장실 가자고 하고, 자세도 바꿔달라고 하기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도저히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드네요. 나날이 증세가 악화하는 어머니를 수발하는 사람으로 가끔은 절망에 빠집니다. 장기간 치매 노인을 돌보다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식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들리는 동서는 끼고돌면서, 정작 매일 돌보는 저는 그렇게 미워할 수가 없어요. 병원에서 처방한 약 복용에 관한 주의사항을 종종 말씀드리는데, 동서는 와서 어머니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하거든요. 정말 무책임한 얘기죠.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지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기 중의 혼탁한 미세먼지와 황사를 볼 때보다 더 마음이 답답해진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얘기를 반복해 짜증 나게 만드는 일, 가끔 황당한 의심과 분노를 터뜨려 몹시도 당황하게 하는 일, 이런 비정상적 행동이 사실은 뇌에 이상이 오기 시작해 생긴 치매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옆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목격한다. 그들도 한때는 교수였거나 인격자였으며 잘나가던 공직자였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앞에서는 과거의 학식, 지성, 인격 같은 단어들은 아무 힘이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과 “효자와 함께 사는 며느리는 반쯤 죽는다”는 시쳇말이 있다. 생업이 있는 처지로 간병과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역할과 책임 분담 문제로 형제간 갈등과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단계에 이르면 엄마는 더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현실이 가장 슬퍼진다.


“어머니가 너무도 힘들게 하셔서 솔직히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누군가를 향한 원망스런 마음도 가끔 생겼구요. 그런데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난 뒤 온전하게 모시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요즘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은, 그리고 딸은 엄마에게 죄인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 최근 나는 그동안 모르고 있던 엄마의 과거 얘기를 알게 되었다. 거의 40년 전 한동네에 살던 이웃 소년이 지금은 중년이 되어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해오면서 듣게 된 사연이다.

“저희 집이 너무 가난했잖아요. 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시고 집에 없으면, 곰돌이 아줌마가 저희 집에 오셔서 저에게 밥을 차려주시고 함께 드시곤 했어요. 그러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요.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여기서 말하는 ‘곰돌이’란 내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고, ‘곰돌이 아줌마’란 우리 엄마를 말한다. 그러니까 서울에서도 아직은 이웃 간에 오붓한 정이 오가던 시절의 일화다. 그러고보니 우리 엄마는 오래전 나를 불러놓고 마치 예언처럼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없는 형편에 너희들이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언제나 뛰어다니며 살았단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사람들은 나이 들면서 이상해진다고 하더라. 배우자를 잃고 나서, 노인이 되면서 더 그렇다고 한다. 혹시라도 내가 이상하게 말하거나 행동하더라도 그것은 내 본심이 아니라는 것, 병든 사람의 것이라고 이해해라. 상처받지 마라. 내 본 모습은 지금의 것이라고 미리 얘기하고 싶구나.”

그렇다. 그것이 엄마의 진정한 모습이다. 내게 첫걸음을 가르쳐주시던 엄마는 최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첫걸음을 내딛던 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날이 밝으면 그 환한 웃음을 보기 위해 엄마에게 달려가야겠다. 지금 아무리 힘들게 하여도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엄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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