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로 이웃 마음 문 열어 정도 잔치도 ‘다닥다닥’
‘행복 1번지’ 성남 논골마을
» 논골마을 하룻밤캠프
서울서 쫓겨난 철거민들 집단이주, 인근 6천가구 1만8천여명 보금자리
주민이기도 한 환경활동가 윤수진씨, 하나 둘 모아 ‘행복 만들기’ 나서
5년만에 문화공간 도서관 세워, 30여개 프로그램 운영하고
게스트하우스로, 사랑방으로
논골축제 성남 명물, 1만명 북적북적, 길거리 벼룩시장도 수천명 발길
주민-학생 어울려 온동네 벽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도와
이사 오고 싶은 대기자들 줄줄이
» 논골마을 빌라들을 배경으로 선 윤수진관장(왼쪽 두번째) 등 마을활동가들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 임춘애 유명
무슨 도서관이 이렇게 소란스러울까. 경기 성남시 수정구 논골로 23번길 2 논골작은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도서관이다. 남한산성 밖 첫 동네인 논골은 논들이 계단식으로 있는 골짜기라서 불린 이름이다. 1970년대 초 서울시내 무허가 판자촌들을 철거하면서 쫓겨난 집단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단대동 3구역 논골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0평씩 불하된 땅에 들어선 5층 빌라들이 빽빽한 곳이다. 한 빌라에만 10~12평 남짓씩 10가구가 입주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주거지 중 한 곳이다. 이 인근에 6천가구 1만8천여명이 살아가고 있다. 서울아시안게임 때 육상 3관왕이던 임춘애 선수가 어려운 형편을 딛고 운동했던 동네이자 모교인 성보여상(현 성보경영고)이 있는 곳이다.
논골은 형편이 피면 하루빨리 떠야 할 곳으로만 여겼던 곳이다. 그런 마을이 2009년부터 변화의 싹이 돋았다. 한 환경단체 활동가가 어느 날 너무 열악한 고향 마을 여건을 돌아보고는 ‘내 마을부터 변화시켜보자’고 나선 것이다. 그가 윤수진(48) 논골마을센터장 겸 논골작은도서관장이다. 처음은 동네 언니 동생들의 수다 떨기로 시작됐다. 수다로 마음을 연 이웃들은 ‘어떻게 우리 동네를 행복하게 만들어볼까’에 생각을 모았다. 이에 따라 그해 28명이 ‘논골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첫 목표는 ‘작은 도서관 건립 운동’이었다. 아무런 문화시설이 없는 곳에서 최초의 문화공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추진위원들은 함께 수다를 떨다가 자기 골목으로 가서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수다를 이어갔다. 그렇게 2천여명이 작은도서관을 만들자는 서명을 해 성남시에 보냈다. 매월 ‘두 번째 목요일’(두목회)마다 모이던 주민들이 2011년 단대동마을센터를 열었고, 2014년 3월엔 자동차 석 대를 주차하던 곳에 마침내 도서관을 세웠다.
60개 부스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이곳은 순수 도서관 기능은 일부 기능에 불과하다. 30여개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이뿐만 아니다. 논골의 집들은 서너 식구가 둘러앉아 식탁에서 밥을 먹기에도 비좁아 시댁이나 친정식구라도 오면 잠재울 공간조차 마땅찮다. 따라서 도서관 3개층 바닥은 모두 바닥난방이 되어 있고 화장실에도 샤워기가 있다. 주민들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밤엔 게스트하우스로 쓰기 위함이다. 주민의 부모가 고향에서 해물이나 음식을 싸오면 펼쳐놓아 금방 작은 마을잔치가 열리는 사랑방이 바로 이곳이다.
잔치는 이곳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다. 2012년 가을 1회 논골축제가 열린 이래 논골은 온갖 잔치가 끊이지 않는다. 이제 논골축제 때면 1만명 가까운 인파가 모여든다. 논골축제가 벌써 성남의 명물이 된 건 60개 부스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있다. 모두 동네 언니 동생들이 모여 수다를 떤 결과다. 가령 축제의 ‘닭 잡고 꼬기오’ 코너엔 닭 100마리를 풀어놓는다. 닭을 잡은 주인공 100명이 신세진 분 100명에게 닭을 잡아 보내주고, 그날 닭을 생포한 이에게는 계란 한 판씩을 선물로 준다. 이렇듯 이들의 축제는 그날 행사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 계기로 이어진다.
매년 여름 이 동네 상원여중 운동장에 텐트를 쳐놓고 30가족을 초청하는 ‘우리 동네 하룻밤 캠프’도 그렇다. 선착순 참가자 모집 공고를 ‘밴드’에 띄우면 단 몇 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이 캠프에선 30가족이 각각 세 가족을 초청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초청가족과 초대된 가족이 밤을 새우면서 더욱 돈독해진다. 게임의 상품도 삼겹살 5근, 소주 한 상자 등 그날 밤 가족과 이웃 간 ‘케미’를 더하게 하기 위한 먹거리들이다.
격월마다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벼룩시장도 매번 3천~4천명이 참가할 정도로 뜨겁다. 이곳에서 닭꼬치를 파는 부스는 논골 아빠들이 맡았다. 아빠들은 닭꼬치를 판 돈을 모아 연말에 산타클로스가 되어 100집을 방문해 선물을 나눠 준다. 낡고 좁은 빌라여서 부끄럽다며 꽁꽁 닫아두었던 문도 산타클로스를 계기로 스스럼없이 열린다. 그렇게 한 집 한 집이 또 열려가는 것이다. ‘논골 아빠’ 김경성(53)씨는 “예전엔 나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꿈도 못 꾸고 살았다”며 “먹고살기 힘드니 매주 하루 쉬는 날엔 약초를 캐러 산으로만 다녔는데 지금은 마을 일들을 함께하고 돕는 게 너무 기뻐서 약초 캐러 못 간 지 5년이 넘었다”며 웃었다.
이웃의 문을 열다 보면 누가 도움이 필요한 줄도 알게 된다. 이날도 도서관 3층 베란다에선 인근 문원중 아이들이 목공과 설비를 배우고 있었다. 논골엔 홀몸 노인과 저소득 노인이 유독 많은데, 이들이 전기가 나가도 전등값보다 몇 배 비싼 출장비를 감당 못 해 아예 고장난 전등을 방치한 채 살아가거나 고장난 집도 수리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중학생들이 마을 어르신들 집을 자기들이 고쳐주겠다면서 배우고 있다. 마음의 빗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열린다.
“불편하지만 떠날래야 떠날 수 없어”
이런 아이들이 예뻐 아빠들은 돈을 모아 문원중에 당구대 하나를 사줬고, 당구모임에 250명이 모여 아빠들에게 당구를 배우며 세대를 초월한 소통의 장을 연다. 성보경영고의 헤어아트와 네일아트 수업을 마을 미용실 언니들이 도와주고 학생들이 실습을 현장에서 하도록 도와주는 상생은 이 마을에서 이젠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다. 이렇게 마음들이 열리니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이 어울려 자발적으로 온 동네에 멋진 벽화를 그리는 것은 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논골을 떠나려는 사람이 없어 들어오고 싶은 대기자가 줄서는 이변이 생겼다. 한때 낙후된 빌라의 지하들은 대부분 빈집으로 방치됐으니 지금은 논골빌라들이 지하방들까지 채워질 정도로 인기 지역이 되었다. ‘논골 엄마’ 서윤정(44)씨는 “방 두 개짜리 빌라에 살아 큰 남매를 한방 2층 침대에 있게 해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 이 마을에서 너무 행복해 이제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