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벌써 온 것처럼 더운데 이제야 대청소를 하고 뒤늦게 겨울옷들을 정리 했다. 단순하게 산다고 하는 수도자인데도 왜 그렇게 짐은 점점 늘어가는지... 물건들을 하나씩 손에 들고는 이거 버려, 놓아 둬를 번갈아 고민하면서 다시 장롱이나 서랍으로 들어간다. 분명 지난 몇 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인데도 `이 물건은 누가 사주어서, 이 물건은 어디 여행할 때 산 것이라, 이 물건은...` 이러면서 말이다.
사별가족들은 고인의 물건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고인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은 단순히 물건의 의미를 벗어나 바로 고인 그 자체일때가 있다. 그런데 사별을 하고 나면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떠난 사람 물건은 빨리 정리해라, 보면 자꾸 생각나서 슬퍼진다` `도배도 하고 가구도 바꾸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 이렇게 권유한다. 모임을 진행하다보면 10명 중에 많으면 7~8명까지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하는 데 이런 문제들을 선생님과 상의하면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역시 `물건을 빨리 정리해라` `이사를 가라`고 말씀하신단다.
사별가족 모임중에 한 분이 남편이 죽고 나서 남편의 물건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모든 옷을 세탁소에서 세탁을 했는 데 남편 냄새는 하나도 안 남아 있고 세탁소 냄새만 난다며 생각이 짧아 세탁소에 맡겼었다며 펑펑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유를 물으니 남편 점퍼를 아들이 한번 빌려 입고 나갔었는 데 그 옷을 아들이 자기 옷장에 걸어 놓았다는 것, 그래서 남편 냄새가 나는 옷이 한 벌 남아 있다고 좋아라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고인과 함께 수십년 살았던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어떤 부인은 아침에 눈만 뜨면 그 전에 살던 집으로 달려가 그 집 대문과 담벼락을 쓰다듬으며 울고는 한다. 그 집은 16번을 셋방살이를 하면서 다니다가 처음 `내 집`이라는 것을 마련한 바로 그런 집이었다. 그 집을 떠나면 빨리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것 같았고 선생님과 이웃의 권유도 있어서 이사를 갔는 데 아니더란다. 되돌리지도 못하고 그저 아침이면 전에 살던 동네를 배회하고 다닌단다.
작년 추석이 지난 후 모임을 하는 데 한 참가자가 혼자 막 웃더니 `수녀님, 제가 지난 추석때 뭔짓을 한지 아세요?` 그러신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은 데 집에 남편 흔적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신발장에서 남편이 신던 신발을 꺼내서 그걸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잖아요` 웃으며 얘기하는 그 자매의 눈에는 이미 눈물 방울이 그렁 그렁 맺혀 있었다.
물건은 그 사람이다. 아직도 돌아가신 분의 핸드폰을 처분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 핸드폰에 날마다 문자도 보내고 카톡도 치고 있는 그 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