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입니다. 캄캄한 밤에 적전상륙을 하려는 군대가 강한 빛의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공중에서 타는 그 빛의 비쳐 줌을 이용하여 공격 목표를 확인하여 대적을 부수고 방향을 가려 행진을 할 수 있듯이 20세기의 인류는 자기네 속에서 간디라는 하나의 위대한 혼을 쏘아 올렸고, 지금 그 타서 비치고 잇는 빛 속에서 새 시대의 길을 더듬고 있습니다.’
함석헌의 간디 평이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도덕·정치 사상’을 담은 ‘간디선집’ 3권이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간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 90권짜리 <간디전집>을 발췌한 것이다. 간디는 평생 동안 자신이 편집 했던 <인디언 오피니언>, <영 인디아>, <하리잔>, <나바지반> 등의 주간지에 매주 기사를 썼다. 그는 남아프리카, 영국, 인도 및 세계 각지에서 편지를 보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답장을 해줘 하루 최고 70통의 편지를 쓸만큼 양심적이고 열성적이었다. 그렇게 40년을 쉬지않고 쓴 엄청난 양의 편지가 있기에 전집이 무려 90권에 이르렀다. 그가 보낸 편지들의 수신자에는 정치가, 종교인, 법률가, 학자, 교육자, 사업가, 예술가, 노동자, 대학생들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엔 네루, 윈스턴 처칠, 타고르, 톨스토이, 로맹 롤랑도 들어있다. 간디가 히틀러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배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방대한 전집에서 중요한 내용들을 인도 출신의 옥스퍼드대 교수로 <헤르메스> 편집장을 지낸 라가반 이예르가 엮은 것이 이 ‘선집’이다. 그러나 ‘선집’만으로도 각권당 90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선집은 1권 <문명·정치·종교>, 2권 <진리와 비폭력>, 3권 <비폭력 저항과 사회변혁>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번역은 오랫동안 간디와 불교를 연구해온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장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했다. 허 교수는 2000년 하반기부터 학교 수업과 관련된 공부 시간을 빼놓고는 거의 전적으로 간디 번역에 매달렸다고 한다. 허 교수는 1973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 때, 10월 유신 반대 데모로 용산경찰서 유치장에 붙들려 들어가 29일 간의 구류를 살고 나온 직후 박재순 선배의 소개로 간 서울 신촌 봉원동 퀘이커 보임에서 함석헌 선생님에게 <바가바드 기타>를 영어 번역으로 공부하면서 인도 및 간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사회개혁가이자 영성가이자 종교인이자 실천가였던 인간 간디의 저작과 분석 등이 망라돼 간디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편지글이어서 전체를 간파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옮긴이 허 교수는 일단 1. 행동가 간디 2. 진리와 세속 3.간디와 붓다 4.종교와 정치 5. 간디와 함석헌 6.비폭력과 문명비판 7.선동가 간디 등 7가지 주제를 일단 간추려서 소개했다. 1번 행동가 간디편에 소개한 아래 내용만으로도 간디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간디는 참을 실현하려고 손발을 포함하여 온몸으로 행동했다. 그는 참의 실현이 단순히 말이나 글에 의해서도 아니고 무행위로 빠질 수 있는 명상이나 선정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민중에 나 봉사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봉사하면서 신 또는 아트만을 실현하기 위해서, 홀로 있거나 집단 속에 있을 때 침묵하고 명상하고 예배하고 기도했다. 간디의 삶은 정중동, 아니 동중정의 삶이다.
간디는 인생의 목적이 민중에 대한 봉사라고 선언하고, 행위에서 무행위를 보고 무행위에서 행위를 보는 사람, 그가 진실한 요기이고 참된 카르마(행동)의 사람임을 믿었다. 증오의 한복판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갔던 그는 스스로 카르마 요기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도 닦는다 하고 고행하면서 세상을 버리려는 자에게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진실한 구도자라 하고, 이 세상이 구도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은 정신적 나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옮긴이는 “간디가 진리와 비폭력이 책을 요구하지않으며 행동만이 가장 위대한 현시이고, 그것들이 실천에 의해서만 보급될 수 있다고 보았다”면서 “간디에게는 세속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명상이나 수행은 모두 정신적 방탕이고 순결(브라마차르야) 계율의 정면 위반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자아실현이란 봉사를 전제로 한다는 간디의 종교관도 분명하게 말해준다.
‘자아실현이나 자기지식은 우리가 모든 생명과 일치되기 전-신과 하나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그와 같은 일치를 완수하는 일은 타인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나누는 것,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 뭇 생명과 그들의 고통, 그리고 신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한다면 개인적 완성, 자아에 대한 지식, 진리추구도 모두 거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아완성은 봉사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간디의 말을 수용하면, 자아가 완성되기를 기다려 봉사하려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이다. 봉사 없는 자아 완성은 도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힌두교 풍토에서 태어난 불교와 힌두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허 교수는 간디의 글을 통해 이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정리해준다.
‘붓다는 자신이 살았던 참담한 시대의 개혁자였는데, 당시 눈먼 바라문은 이기적이어서 붓다를 거부했지만, 실천적 대중은 붓다가 자신들의 신앙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분임을 확인하고 그를 따랐으므로, 불교는 대중의 이름으로 실천되는 힌두교였다. 간디는 붓다를 비폭력 행동가의 한 사람으로 내세워 징기스칸, 히틀러, 무솔리니와 같은 폭력행위자와 선명하게 대조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붓다야말로 진리와 비폭력을 앞세워 당시 부패와 나태에 빠져 있는 바라문 계급을 내치고, 민중에게 지고의 행복을 선물했던 인물이었다”면서 “불교도가 나태하여 이웃에게 부담이 되거나, 기아 상태에 있는 민중의 운명에 관심이 없는 것도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정치라고 하면서도, 정치가의 기질이 자신을 한번도 지배한 적이 없다고 했던 간디의 정치관도 소개한다. 간디는 ‘정부의 정치 형태는 영적인 힘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2권 <진리와 비폭력>은 간디가 삶을 걸고 지키며 싸워온 ‘아힘사(비폭력)’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는 아침사, 즉 비폭력에 의해서 생성되는 도덕적 힘이 이기성에 토대를 둔 어떤 힘보다 무한히 위대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간디는 폭력은 공포에서 나온 것이며, 공포는 무지한 이기주의 그림자로 보았다. 간디의 ‘아힘사’론이다.
‘아힘사를 체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의 이기주의를 반드시 청소해야한다. 사람 안에 남을 죽이고 싶어하는 살의가 흔쾌히 죽으려는 태도와 반비례하여 존재한다. 모든 존재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폭력이 치유될 수 없고 감소될 수도 없다는 점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아힘사는 가장 넓은 의미로는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처럼 취급하려는 자발적 의사다.’
이 책 2권엔 간디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 소식을 듣고 <인디언 오피니언>에 쓴 글이 있다. 간디는 같은해 인도 청년이 런던에서 영국 관리를 암살한 것을 비판한 것처럼 안중근의 저격도 비폭력을 저버린 행위로 비판한다. 그러나 서양 제국주의 문명과 일본 제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간디의 글은 “영국인들이 이집트나 인도에서 세력을 장악해 권리와 특권을 향유하고 있듯이,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을 돕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고 시작한다. 간디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예속시킨 일은 용기를 나쁜 목적에 사용한 것”이라며 “서양문명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달리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간디는 “인민의 참된 복지를 심정에서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