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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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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같은 막걸리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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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책-.jpg 어느 시인은 시를 ‘생의 비애가 곪아터진 화농’이라고 했다. 그 곪아터진 고름 색깔 막걸리를 마시고, 핏빛 화농을 찍어 옮긴 그림이 있다. 김주대 시인의 문인화들이다. 그 그림 125폭이 <시인의 붓>이란 화첩에 담겨 출간됐다. 

 페이스북 스타인 그가 올린 글만 보면, ‘작취미상’의 상태로 붓을 들 때가 많다. 더구나 그는 제대로 그림을 배워본적조차 없다고 하니, 그저 취한 김에 꺼이 꺼이 울다 고름을 물감 삼아, 눈물에 비벼 화선지에 한풀이 살풀이극을 펼쳤을지 모른다. 그러니 장승업류의 취화선이나 잭슨 폴락류의 광기 어린 페인팅이 나올법한데, 정작 화첩에 보이는 것은 <어린왕자>보다 더 ‘어린’ 아이의 동화다. 불꺼진 방에서 장에 간 엄마를 홀로 밤새워 기다리는 아이 같은, 아니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가버린 엄마를  찾아 밤마다 세상을 비추는 달님 같은. 


 그런데도 눈물 아롱진 끈적끈적한 액체의 흔적은 없다. 카타르시스의 마술일지 모른다. 눈물과 함께 온갖 티마저 빠져나가 그처럼 명징해졌을까. 고산준령에도,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도, 혼자 고향집을 지키는 엄마에게도, 해바라기를 바라보년 소년에게도 모두 아기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있다. 


1 고향집-.jpg1 기다림-.jpg1 물방울-.jpg1 순-.jpg1 할머니-.jpg1.걸음-.jpg1바위위-.jpg1술병-.jpg

 

 잘린 목에서 자란 팔, 베어진 어깨에서 빠져나온 손이 허공을 더듬어 죄악 같은 몸뚱이에 파랗게 매단 봄, 사람들 머리 위에 각혈하듯 토해놓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가로수 새잎>

 

 함마로 구들장바위 때리듯 먹장구름 치는 천둥소리 자갈만 한 비 떨어졌다. 비는 무게로 하늘을 대지에 밀어붙였다. 핑계 좋은 우리는 유치원생처럼 손잡고 뛰었다. 무너진 생활을 잊고 비의 바깥까지 아스라이 젖다가 경제(經濟)도 없이 타오르는 무지개를 보았다. 추워서 따스했던 살과 도덕 가운데 모닥불을 피우고, 잠들지 않고 잠보다 깊었떤 우리. 생활로 돌아오며 이유 없이 화내던 남쪽 들녘. 원두막 하룻밤. 먼 뒷날의 오늘까지 사무치자고 철없이 좋았던, 울었떤, 하룻밤. -<지난여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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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김 시인의 시가 그림이 되었다. 눈물의 폭포수가 피워내는 물안개 너머에 무지개가 피어나도 신비롭지만, 이렇듯 달 뜨고, 기쁘고, 슬프고 그리운 아픔들조차 눈물로 흐려지긴커녕, 아기 눈동자처럼 맑게 비추어낸건 더한 신비다.

 그러니 가슴이 아리고, 팍팍한 이들은 이 그림들을 보고 김 시인과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며 울어 볼 일이다. 그러면 평생 가슴을 꽉 막고있는 ‘애응지물’이 쑥 내려가 이토록 아기 눈동자처럼 명징해질지 누가 알겠는가.

  ‘김주대 문인화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전시중이다. 1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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