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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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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사별, 여러번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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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회는 28년째 사별가족 돌봄 모임을 하고 있다. 그 중 10여년을 내가 동반하고 있으니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별가족들을 만났겠는가? 모두가 아프고 시린 사연들을 가지고 힘든 발걸음을 용기내서 남산 꼭대기까지 오지만 10여 차례의 모임을 한 번도 빠짐없이 오기는 쉽지 않다. 한 두명은 초반에 그만두시기도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상실의 자각’도 되지 않아 ‘아닌 척’, ‘안 슬픈척’하고 산 긴 세월 끝에 용기를 내었으니 본인도 낯설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첫 모임은 ‘상실의 자각’부터 시작한다. 이제 그 분은 떠났고, 나는 남았고, 그 분은 저 세상에 있으며, 나는 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주로 가장 간단하게 하는 방법은 모임 하는 장소 가장 중간에 고인의 이름을 명패에 쓰고 올려 놓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분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쉽지 않다.


     상실을 자각하고 나면 뒤 이어지는 ‘상실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큰지 모른다. 이 때쯤이면 다른 가족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그 모임 가서 더 힘들어 지는 데 가지 말라’, ‘여태 잘 견뎌왔는데 왜 그런데 가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잊은 사람을 다시 끄집어 내서 고통받느냐’ 그런데 정말 그들이 잘 살아 왔고, 모든 것이 해결되고, 고인을 잊었다면 이런 모임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별’은 일회성인 사건이다. 그러나 ‘상실’은 사별 이후에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래서 상실의 고통은 내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서 잘 산다고 생각했다. 20여 년 동안 두 딸을 잘 키우면서 스스로를 칭찬해도 될 만큼 용기 있게 살았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두고 있는 큰 딸이 청첩장 시안을 가지고 왔다. 무심코 그 청첩장을 열었다. 그런데 남편 이름 앞에 ‘故’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남편이 없구나, 얘를 어떻게 시집 보내지, 예식장에는 누가 데리고 들어가지...’라는 생각부터 그 동안 힘들게 살았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그 설움과 갑자기 떠오른 그리움과 주변 사람들로 받았던 여러 불편한 시선들과 사별로 인해 잃은 많은 상실들, 친척,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과 경제적 문제 등이 아프게 다가왔다. 암튼 용기 있게 ‘식장에서 네 손 내가 잡고 들어가면 안 되겠니?’라며 사돈과도 의논이 잘 되어서 혼사를 잘 치루었다. 


     그런데 딸이 신혼여행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자마자 두어달 동안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인지 바로 탈진해서 쓰러진 그 어머니는 일주일동안 입원을 했다. 그리고는 퇴원 하자 마자 내게로 달려왔다. ‘저는 사별한지 20년 되었는 데 그 동안은 미친 듯이 사느라고 몰랐는 데 저는 애도도 충분히 못 했고 실컷 울어보지도 못했고 가슴에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상실은 그런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숨겨져 있던 내 안에서 불쑥 그 끝을 송곳처럼 내밀며 다가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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